Page 248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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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독산성 항공사진
① 1789년 기록
표 20. 1789년(정조13) 기록
『정조실록』 27권, 정조 13년
· 상이 묏자리를 살피고 온 여러 신하들을 불러 보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이르기를, “지
금 대신의 장계를 보니 내 마음이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이런
큰일을 당하여 어찌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슬픔을 억제하는 것을 주로 삼아 힘쓰고자 하지
않겠는가마는 종전에 가슴에 맺혔던 것이 나도 모르게 아무 때나 드러난다.” 하고, 이어 소견
을 물으니, …(중략)… 민시가 아뢰기를, “원소를 완전히 봉안한 뒤에는 독성산성(禿城山城)
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온당하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산성의 산 꼭대기가 혈(穴)
위에서 바라보면 지극히 가까운 것 같지만서로의 거리가 10리나 멀리 떨어져 있다.
밥짓는 연기나 닭·개의 소리가 원래 묘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니, 병기(兵器)를 간직해
두는 따위도 이해를 논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중략)…”
<정조 13년 7월 13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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