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3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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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성묘(唐誠墓)(묘)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밀양(密陽) 당씨(唐氏)의 시조인 당성(唐誠)의 묘
이다. 본래 중국 절강성 명주 사람으로 원나라 말기에 병란을 피해 고려로 귀화하
였다. 율령에 밝았으며 고려에 귀화하여 정동행성의 연리를 거쳐 사평순위부 평사
에 올랐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당시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맡아보았고, 조선
개국 후에는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전서를 거쳐 공안부윤에 이르고, 많은 공을 세
워 1392년(태조 1년)에 개국원종공신의 녹권을 하사받았다. 공의 묘소는 오산시 내
삼미동 산 21-3 필봉산(당시는 봉화산이라 함) 남쪽 기슭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
월 보름이면 시향을 지내고 있다.
★금암동(錦岩洞)
금암동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899년(광무3)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문
시면, 묵암동(墨巖洞), 그리고 다시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
시 문시면 검암동(黔岩洞)으로 나온다. 이것은 금바위 또는 검바위로 불렸으며 바위
와 연관이 많은 마을로 바위가 많고 바위가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을
한가운데 잘 생긴 바위가 있어 금바위라고 불러왔는데 이를 한문으로 쓰면서 금암
(錦岩)이라고 고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우리말의 ‘감’의 뜻은 크다는 의미
를 지니고 있어 이 ‘감’이 ‘검’과 ‘금’으로 바뀌어 쓰인 듯하다. 금바위나 검바위도
큰 바위를 뜻하는 의미에서 쓰여졌으며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암동(錦岩洞)이 된 것
이라 볼 수 있겠다. 금암동은 1915년 1월 29일 수원군 성호면 금암리가 되었으며,
1988년 12월 2일 경기도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금암동고인돌군이 있는 마을로
서 바위와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바위)
이 금암동 고인돌공원에는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라고 불리는 두 개의 큰 바
위가 있다. 이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는 금암동고인돌들의 모암(母岩)이다. 이
곳 고인돌 덮개돌의 재료를 공급해준 공급 바위들 중의 일부인 것이다. 이 할머니
바위와 할아버지바위가 마치 여럿 자식들을 두었고, 그 자식들을 분가시켜 대가족
을 이룬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모암인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
에서 분가한 고인돌들이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가 모든 금암동고인돌군을 형성하고
있다. 미처 고인돌로 살림을 차리지 못한 손자, 손녀격의 바위들도 할머니바위와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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