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0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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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데서  지어졌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일설에는  활을  쏘는  활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활을  쏘는  활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
                  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899년(광무  3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의하면  초평리  궁기리(宮基
                  里)가  나오고,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초평면의  궁대
                  (宮垈)  등의  명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임에  틀림없으며,  필자는  행궁

                  (宮)이  있던  마을로  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마을의  지형이  궁(弓)의  모양이
                  라  하여  궁(弓)터였으나,  마을의  유지  등이  궁(弓)보다는  궁(宮)이  좋겠다  하여  붙여
                  진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장고개(고개)




                    궁터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산장(場)을  보러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5.  신장동(新場洞)




                    오산의  다른  동과  마찬가지로  1989년  1월  1일자로  당시의  궐리  일부,  수청리,  금

                  암리,  내삼미1·2리와  은계리를  통합하여  동이  되었다.
                    원래는  1789년(정조  13년)에는  시봉면,  삼미면  지역이었으며,  1899년(光武  3년)에
                  는  문시면  지역과  초평면  지역으로  있다가  1914년에는  문시,  초평,  그리고  어탄면
                  지역에도  일부  포함되었던  매우  복잡한  지역이었던  곳이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

                  의  군·현을  비롯한  방리의  경계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제도로  개의  위아래  이가
                  서로  어긋맞음과  같이  서로  어긋나고  뒤섞이어  일직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것은  봉건제도  하에서  지방의  모반을  방지하고  쉽게  진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러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신장동지역이  조선시대  때에  중규면,  구정촌이란  색다른
                  지명의  등장이다.
                    중규면은  다른  문헌에서는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오산화성궐리사를  중심으로

                  오랜  세월동안  마을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곳이며,  오산물향기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전원도시이다.  신장동은  새장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동명이다.





                  ★수청동(水凊洞)



                    수청말이라고도  하였으며,  옛날부터  맑은  물이  흐르고  늘  솟는  샘터가  있어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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