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2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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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는  중국인을  고용하여  앞  텃밭에  토마토를  재배하였다.  오산3·1독립만세운

                  동  때에도  이  마을에는  일본  경찰이  얼씬도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산3·1독립
                  만세운동에  가담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한다.  지금  천태종  황덕사가  있
                  는  곳이  마구간  자리였고  한  번에  대여섯  필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한다.  그
                  가  말년에  낙향하여  직접  마을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집  안팎일을  보살폈는데
                  품삯은  후했다고  한다.  별장은  정원이  아름다웠는데  청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당시  이  나무는  아주  귀한  나무였다  한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로타리를  만들었
                  고,  울타리는  구기자와  산수유를  심었다  한다.  박영효가  그곳에  머물  때는  뒷산에서
                  일본  경찰이  보초를  설  때도  있었다  한다.  지금은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다.  뒷산
                  너머에  그의  과수원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박영효의  과수원이  있던  그  자리를
                  박동이라  불렀다  한다.  현재  필봉산  남서쪽  입구  쪽이  되겠다.  지금  한호빌라가  있
                  는  뒷산과  상수도  물탱크가  있는  자리로  과수원  면적은  상당히  넓었다  한다.  박영

                  효는  철종의  부마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며  조국의  개혁을  위해  힘쓴  혁명가였으
                  나,  대한제국이  망한  후에는  일본  작위를  받고  친일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다.
























                                                      박영효  별장  터





                  필봉산(筆峰山)(산)



                    오산시와  화성시  동탄면  금곡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  산의  서쪽은  오산시,  동쪽은
                  동탄면  금곡리이다.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고  있다.  정
                  상에는  정자(팔각정)가  있으며  전망이  좋고  등산  코스도  좋아  심신  단련하기에  좋
                  다.  필봉산은  정조대왕이  독산성에  올라  필봉산을  바라보며  붓머리처럼  생긴  저  산

                  이  무슨  산이냐  물어본  이후에  필봉산이  되었다  한다.  당시에는  봉화산이라  불렸다.
                  산은  145m  정도로  높이로  높지  않은  산이나,  근방에  높은  산이  없어  오산지역을
                  측량할  때  기준으로  삼았다  한다.  오산의  정신적  주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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