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7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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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으니,  수철리,  누읍리,  타종리,  마유동,  신촌,  모전촌,  용란리,  서촌,  여대리,  내

                  창동,  어은굴리,  대화촌,  궁기리,  어인포  등이다.  그리고  1895년(고종  32년)에  발간
                  된『기전  수원부읍지』에도  『화성지』와  마찬가지의  면이었으나,  4년  후인  1899
                  년(광무  3년)  5월에  수원군의  군수인  이범선이  쓴  『수원군읍지』에는  초평면으로,
                  서촌·여대리·누읍리·모전촌·궁기리·내창동·어은굴리·대화촌  등의  방리가  속했다.  당
                  시의  수원부읍의  지도에는  초평(草坪)으로  나와  혼동을  가져오고  있으니,  당시에는

                  쓰는  사람에  따라  면의  명칭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1831
                  년에  발간된  『화성지』에서  오산화성궐리사가  초평면에  속했으며,  이런  사실은
                  1914년까지  계속되어  초평면의  지역이  오래동안  현재의  신장동  일부까지  포함되었
                  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호면·초평면·산
                  성면·문시면  등의  4개  면이  성호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의  오산시가  탄생한  것이
                  다.  초평면은  오산의  서부로  전원도시이며,  지금까지는  개발이  더디었지만  최근  개

                  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이  시로  승격되면
                  서  옛  지명을  되찾아  초평동으로  시작한  농·공·주거지역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상재충신정려문이  있다.





                  ★가수동(佳水洞)



                    옛날부터  물맛이  좋고  물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냇물
                  이  맑고  깨끗하지는  않으나  예전에는  오산천의  물도  깨끗하고  아름다워  외지에서는

                  이곳을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가수동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89년(정조  13년)에  초평면의  방리로  가사(加士)리란  지명으로  나오고,  1914
                  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샘골로  통합하여  가수동이  되어  성호면에  편입이
                  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가수동의  어원적  변화는  가술→가숫골→가술리→가수동으
                  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가시미산(산)



                    가수동  뒤(북쪽)의  산으로  가시니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의  모양이  기러기의  가슴
                  가운데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갑골산(산)




                    관봉산,  감투봉이라고도  불렸다.  산의  모양이  거북이  등처럼  완만하게  솟은  야트막
                  한  산으로  높이는  낮으나  주변에선  빼어난  산으로  인식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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