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9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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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보호수)
시나무로 지정된 보호수로 벌음동 184-1 속칭 조상께에 있는 정지목으로 수령은
약 440년이며, 나무 높이 11m, 나무 직경 10m로 자태가 웅장하고 부락민의 휴식
처로 이용된다. 생김새는 버섯 모양으로 약 100㎡정도로 퍼져 있다.
조상깨(숲)
조산(造山)깨에서 파생된 발음의 변성으로, 마을 앞에 있던 숲이었다 한다. 지금은
시의 보호수인 팽나무가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 풍수지리에 의하여 서동
앞의 호랭이산의 뿌리가 벌음동을 찌르고 있는 형국이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고 벌
음동 마을은 여성의 음부를 닮아 마을의 아낙네들이 이 양기를 차단하기 위해 인공
적으로 숲과 산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음나무를 비롯한 가시가 많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음나무는 재앙을 예방한다고 하여 농촌 대문 위
에 많이 걸어놓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는 팽나무 외에 음나무 10여 그루가
남아 있다. 또한 벌음동 지명 유래에서 마을에 소리가 나면 주민들이 싸우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겨 두레패가 없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말이라고 전한다. 실제로 현
재는 마을에 풍물이 없지만, 광복 전까지는 마을에 두레가 있었다.
★탑동(塔洞)
탑이 있었던 마을이라 타마루·돌모루·석우리 등의 돌과 관련 있는 여러 지명으로
쓰여졌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수성 최씨, 파평 윤씨, 전주 이씨, 수원 백씨의 족보
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중엽부터 탑동이란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지
명임에는 틀림없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탑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하나
크기나 모형은 전혀 알 수 없고 탑이 세워졌던 자리를 탑재라고만 전한다. 1991년
에 마을주민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 탑이 있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돌탑을
만들어 세워 탑동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고려시대 마을에 읍탑이 있어
탑돌이를 하던 고장이었다는 설을 신빙성 있게 보고 있다.
초평들(들)
탑동 앞에서 오산천까지의 들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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