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3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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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의  뜻도  있으며,  우리말로는  ‘밧삼미’로  ‘밧’은

                  ‘밖’의  옛말이며,  문시·뱅골·명학을  묶어  외삼미동이  되었다.  탁자식과  개석식이  혼
                  재한  고인돌  2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시(마을)



                    외삼미동의  가장  북쪽  마을로  화성시  태안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엔  문시
                  면  사무소가  있던  마을로서  6·25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군사  지도에도  표시된

                  마을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뱅골(마을)



                    방곡  또는  뱀골이라고도  불리며  예전에는  뱀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삼미초등학교(현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의  북쪽  너머에  있는  마

                  을이다.  해평  윤씨  집성촌이다.  현재  해평  윤씨  세장지가  마련되어  있으며,  윤기반
                  의  신도비가  서  있다.


                  메라니(마을)



                    외삼미동  삼미초등학교  근처와  앞쪽의  마을로  뜻이나  연유를  알  수  없다.  ‘메(산,

                  뫼)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마을에는  고인돌  2기가  있는데,
                  이  고인돌은  다른  곳의  고인돌과  달리  탁자식과  개석식이  함께  조성된  특이한  사례
                  이다.
                    원래  삼미학교의  출발은  삼미의숙으로부터이다.  일제시대  윤학영이  설립한  삼미의

                  숙이  발전해서  삼미국민학교가  되었으며,  이후  이름을  바꿔  삼미초등학교,  광성초등
                  학교  삼미분교,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  삼미초등학교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미의숙터,  삼미국민학교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세교동(細橋洞)




                    세교동은  작은  다리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거의  없으며,  그래서  잔다리,
                  세교리  등으로  불리어졌다.  세교동이  문헌에  나타나는  것을  살펴보면  오래된  마을
                  임에  틀림없다.  1789년(정조  13년)에  시봉면의  방리로  세교리가  등장한다.  지금은
                  세교  1동·2동·3동으로  구분되나,  예전에는  큰말·건너말·오리골로  세  마을이  합쳐져

                  세교동이  되었으며  1989년  오산시가  승격되면서  세마동의  동사무소가  위치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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