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1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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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이름이다. 원래 수청동의 중심은 경부선 철길 동쪽(화성초등학교 부근) 이었으
나, 현재 수청동의 중심은 오산물향기수목원 부근이다.
독골(마을)
현재 대우아파트가 있는 일대의 마을로 독동이라고도 불렸으며, 윗독골과 아랫독
골이 있었다. 예전에 옹기를 굽던 곳이어서 붙여졌다는 설과 이(理)에 밝으며 의롭
고 인자하며 독실한 사람이 홀로 사는 마을이라 붙여진 설도 전한다. 그래서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후자의 지명을 전설로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헌에서 살펴
보면 1889년에는 문시면에 옹동(瓮洞)이 있었고, 또한 어탄면에 독동(篤洞)이 나타
나 모두가 위치로 보아 현재의 수청동을 말함이라 본다.
박동(마을)
현재의 화성초등학교가 있는 북쪽마을의 옛 지명으로 박가 동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구한말 박영효가 은계동에 별장을 짓고 살면서 일대에 과수원을 운
영하여 박동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매홀중학교 남쪽에 박씨
가 살아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은계동(銀溪洞)
은개 혹은 위개라고도 하였으며, 원래는 화성군 동탄면 금곡리(金谷里)였으나,
1987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007호(1986년 12월 23일 공포)에 의하여 오산읍에
편입됨에 따라 은계리로 되었다. 은계동은 동탄면 소일 남쪽 마을로 오산천변의 마
을이며 은빛처럼 맑은 계곡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박영효 별장 자리(집)
당시 집사의 얘기로는 박영효 별장은 동탄면 금곡 3리였고, 지금은 오산시 은계동
64번지이다. 1960~70년대에는 유림각 호텔과 주변이 별장 자리이었고, 현재는 다
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다.
별장은 양철 지붕으로 된 단층이었고, 방이 네 개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궐집 또는 궁집이라 불렀다 한다. 그 집은 1957년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대문
은 솟을대문으로 대한문을 본떴는데 크기는 대한문의 3분의 2였다니 대단히 웅장하
고 컸다. 별장은 정원을 곁들였는데 2천여 평이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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