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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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서 수리봉으로 오르는 소말구리 능선이다. 수리봉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m 뻗어 내린 능
선에 은밀한 바위굴이 하나 있다. 오초사의 스님들이 수도하던 암굴이다. 대여섯 명의 군사가
매복할 석굴이 있어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청사고와 충양공김준룡전승비에 따르면 적장 양고리가 사살된 곳은 종루봉 아래의 崖側이다.
호항골에서 마재로 오르는 산길이다. 종루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광교암으로 불리
는 암벽이 있다. 번암 채제공이 충양공김준룡전승비를 새긴 바위 암벽이다. 그러나 필자는 淸實
錄과 金俊龍神道碑의 기록에 무게를 둔다. 조선 정부는 적장 양고리가 광교산 전투에서 죽었는
지도 알지 못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사진은 아우봉에서 본 마재와 호항골, 서봉사지의 모습이다. 1637년 1월 6일의 눈 내린 날씨
와 흡사한 풍경이다. 청군과 결전을 앞둔 김준룡 장군도 이 봉우리에 올라 이런 장면을 바라보
았을 것이다.
좌하귀의 묘지가 마재(馬岾)이고 중앙 부분이 호항골(胡降谷)이고 중상귀가 石窟이고 우중귀
의 비닐을 덮은 곳이 서봉사지(瑞峯寺址)다. 마재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하호항골(下胡降谷)이고
토끼재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상호항골(上胡降谷)이다. 전라근왕병의 집중사격에 호로병이 떼
죽음한 호항골(胡降谷)이다. Daum지도 카카오맵은 이 골짜기를 상황골, 하황골로 표기하였다.
이 기회에 상호항골, 하호항골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도-19 마재, 호항골, 서봉사지
광교산전투, 김준룡장군 전승지 답사기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