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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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리봉(鷲峰)

                수리봉은 광교산 시루봉의 동쪽 봉우리다. 해발 570m로 시루봉 다음의 높은 봉우리다. 시루
               봉에서 불과 400m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암봉이 독수리의 머리와 같아 수리봉(鷲鳳) 또는
               서봉(瑞鳳)이다. 성남과 용인, 수원이 한눈에 조망되는 광교산 최고의 전망대다.

                『대동야승』은 ‘청군이 산 북쪽에서부터 엄습해왔다. 전투 중 미시(未時,오후 2시)에 광양현감
               최택(崔擇)의 진지가 무너지고’로 기록한다. 이에 김준룡 장군이 군사를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41)
                『연려실기술』 은 ‘청군이 산 북쪽에서부터 엄습해왔다. 전투 끝에 유시(酉時,오후 6시) 무렵,
               광교산 동남쪽에 있던 광양현감 최택(崔擇)의 진지가 무너지고’로 기록한다. 이에 김준룡 장군
               이 군사를 지원하여 청군과 혼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두 기록에서 『대동야승』의 미시(未時)를 먼저 취한다. 정황상 안개 낀 겨울 1월 6일 유
               시(酉時)는 전투를 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이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의 유시는 광교산 전투가
               끝난 시각을 의미한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청군이 산 북쪽에서부터 엄습해왔다. 광교산 동남쪽에 있던 광양현감 최택(崔擇)의
               진지가 무너지고’에서 광양현감 최택이 지키던 진지를 수리봉으로 본다. 광교산의 최고봉(上峯)
               시루봉의 동남쪽에 수리봉과 소말구리 능선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수리봉 동남쪽 200m 아래에는 수백 명의 군사가 거처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광교산 등산지
               도에 표기된 헬기장이다. 또한 동천동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낼 때 세운 천하대장군이 눈을 부라

               리며 우뚝 서 있다. 광교산 전투의 날 崔擇의 전라근왕병과 多鐸의 청군이 전투를 벌이던 격전
               지로 판단한다.
                1월 6일, 광교산 전투일 오후 2시경, 청의 예친왕 다탁의 군사가 전라근왕병의 광양현감 최택

               의 군사를 공격해왔다. 청군의 일부는 수리봉 동남쪽의 소말구리 능선으로 공격해왔고, 일부는
               시루봉 북쪽의 노루목으로 잠입하여 공격해왔다. 청군의 앞뒤 공격에 최택의 전라근왕병이 포

               위되어 위태로웠다. 이에 종루봉(비로봉)에서 군사를 지휘하던 김준룡 장군이 군사를 보내어 지
               원하였다. 조선군과 청군이 뒤엉켜 혼전이 벌어져 사상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충양공김준룡전승비는 광교산 전투에서 청의 대장 3명을 사살했다고 기록하였다. 청군의 백

               전노장 양고리(楊古利)와 몽골 추장 공유덕(孔有德), 경중명(耿仲明)이 전라근왕병의 조총에 맞
               아 죽은 것이다.
                청실록과 김준룡신도비에 따르면 적장 양고리가 사살된 곳은 수리봉 아래의 石窟이다. 서봉




               41) 『燃藜室記述』, 제26권 인조조 고사본말 諸將事蹟史籍.



               92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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