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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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 관련 지명과 유물, 유적이었다.

                ‘말구리, 말무덤, 도마치, 용마등, 송장거리 등의 지명’, ‘서봉사지(瑞峯寺址)에서 출토된 무기
                 33)
               류’ , ‘광교산 형제봉, 종루봉(비로봉), 수리봉 능선에 쌓은 돌탑’, ‘광교산 전투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을 서봉사(지), 창성사(지), 성불사(지)’, ‘병사들의 밥 짓는 쌀뜨물이 뿌옇게 흘렀다는

               성복천’, ‘군사들이 천막을 치고 야영하였다는 동막천(東幕川)’ 등이었다. 이들 지명이 ‘병자호
               란, 광교산 전투의 과정’을 되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1) 말구리, 소말구리, 도마치의 지명 탐색



                (1) 말구리
                말구리는 말이 굴렀다는 고개의 이름이다. 일명 큰말구리로 부른다. 광교산 동쪽 말구리 능선
               에 위치하며 용인시 고기동과 동천동을 남북으로 잇는 고개다.

                      34)
                이석순 은 ‘이 고개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왜장이 이 고개를 넘다가 말이 굴러 죽었기에 불린
               이름으로 왜장의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말을 묻은 곳은 배나무골 뒷산으로 말무덤이라는 지명
               이 남아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유래는 구전되어 온 것이기에 말하는 사

               람, 듣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둔다’고 주석을 달았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이석순의 구전 조사 기록에 동의한다. 그러나 말구리에서 구른 말은 임진

               왜란 때의 일이 아니라,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 때의 일로 판단한다. 왜장(倭將)의 말이 구른 것
               이 아니라 호장(胡將)의 말이 굴렀다는 고개다. 왜냐면 왜군과 조선군이 전투를 벌인 곳은 용인
               시 기흥구 보정동의 이진산(夷陳山)이고, 호군과 전라근왕군이 전투를 벌인 곳은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의 광교산(光敎山)이기 때문이다.
                이진산(夷陳山)의 이름은 ‘왜이(倭夷)를 늘어놓은(陳) 산(山)’이라는 의미로 지역 사람들은 이

               질산으로도 부른다. 또 다른 봉우리인 예진산은 옛날에(古) 진(陳)을 친 산이라는 의미로 예진
                       35)
               산(古陳山) 으로 부른다. 두 산봉우리 중의 하나인 이진산은 아파트 단지로 사라지고 예진산만
               남았다.

                예진산은 광교산으로부터 약 6km 거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왜장(倭將)의 말이 말





               33) 창검·마름쇠·화살촉 등의 무기류 사진은 서봉사지를 발굴한 한백문화재연구원이 제공.
               34) 이석순, 앞의 책.
               35) 예진산(古陳山),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산 83-1, 해발 135.8m.



               86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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