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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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의 일부를 마재와 토끼재에 매복하여 청군의 추격을 방어하는 전략이었다. 또한 보령 무장

               인발에게 호항골을 기어오르는 청의 기마군을 수비하게 하였다. 마름쇠를 깔아 기마병의 접근
               을 막고 조총과 탄약, 활과 창검으로 방어하게 하였다.



                (10) 청군사령관 예친왕 다탁이 나각을 불었을 때, 광교산 전투는 청군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
               다. 도마치에서 형제봉을 공략하던 적장 양고리 또한 광교산 전투는 이미 청군이 승리한 것으

               로 판단하였다. 그래서 종루봉(중앙봉) 아래의 호항골로 진입하였다. 호항골을 따라 마재(馬岾)
               와 토끼재(兎岾)로 기어올랐다. 시루봉과 수리봉에서 후퇴하는 전라근왕병을 앞뒤에서 협공코
               자 하였다. 그러나 퇴각하던 전라근왕병이 마재와 토끼재, 호항골에 매복하여 기다리는 줄은 까

               맣게 몰랐다.


                (11) 박의와 최택, 인발 장군이 적장 양고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형제봉을 우회하여 호항골

               로 들어오는 양고리를 발견하고 때를 기다렸다. 적장 양고리가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만을 기다
               렸다. 청군의 기마병이 서봉사 앞의 호항골에 들어섰다. 이에 보령 무장 인발의 군사와 서봉사
               의 승병이 적장 양고리의 군사와 백병전을 벌였다. 숫적으로 우세한 청군의 격렬한 공격에 보령

               무장 인발과 그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서봉사의 승병이 쓰러졌다.



                (12) 오후 5시경, 붉은 갑옷을 입은 양고리가 서봉사를 우회하여 수리봉으로 향했다. 말을 타
               고 수리봉 아래 300m 지점의 오초사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옆 은밀한 崖側 石窟에 전라근
               왕병이 매복하여 있었다. 수도승이 수행하는 暗窟인 바, 대여섯 명의 병사가 매복할 수 있는 크

               기이다. 암굴에 매복하던 전라근왕병의 조총수가 적장 양고리를 향해 조총을 겨누었다. 대여섯
               발의 집중포화에 청의 백전노장 양고리가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굴렀다.

                전라근왕병의 집중포화에 양고리를 뒤따르던 청군도 무더기로 쓰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퇴각한 줄 알았던 전라근왕병의 거센 역격에 호로군이 뿔뿔이 흩어졌다.
                오후 6시, 해가 짧은 겨울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청군사령관 다택이 징을 치고 뿔나팔을 불고

               백기를 올려 청군의 퇴각을 서둘렀다.

                (13) 수리봉, 종루봉, 형제봉에서 퇴각한 전라근왕병이 진지에 집결하였다. 지금의 수원시 광

               교동의 문암골(門岩谷)이었다. 사방이 능선으로 둘러싸인 문암골은 적의 침투를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었다. 공설운동장 크기의 공터에 샘터와 계곡이 있어 물이 풍부하였다. 군사들의 밥을 짓




               112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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