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오산문화총서 7집
P. 110
熙, 1307년~1382년)를 추모하기 위하여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건립한 탑비다.
진각국사는 충렬왕 33년에 출생하여 13세에 화엄종 반용사에 들어가 19세에 상풍선에 오른
고려말 화엄종사로서 왕은 ‘대화엄종사 선교도총섭’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1965년에 창성사지
에 있던 진각국사탑비를 수원시 매향동으로 옮겼다.
창성사지는 광교산 종루봉(종앙봉) 서쪽 기슭에 위치한다. 창성사지에서 종루봉까지의 거리
는 340m로 아주 가까운 위치다.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의 날 창성사가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
을까? 종루봉(종앙봉)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준룡 장군과 그 수하 병사들에게 물과 주먹밥을
급식하지 않았을까?
도-41 창성사지 도-42 창성사지 우물터
(3) 성불사(成佛寺)
광교산 성불사는 고려후기~조선시대의 사찰로 알려진다. 성불사지(成佛寺址)에 안상(眼象)
이 조각된 석탑 부재가 남아 있다. 사람 크기의 작은 석탑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사료가 없
어 성불사지의 정체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성불사지는 광교산 형제봉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성불사지에서 형제봉까지의 거리는 250m
로 아주 가까운 거리다.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의 날, 성불사가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형제봉에서 전투를 벌이
는 병조좌랑 박의와 전라근왕병에게 물과 주먹밥을 급식하지 않았을까?
108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