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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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재산의 동북쪽은 화포를 끌고 쉽게 올라올 수 있는 낮은 언덕이다. 광교산 전투를 준비하던
청의 기마군은 운재산 아래에 진을 쳤다. 지금의 성남시 금곡동이다.
金谷(쇳골)이란 金谷洞의 지명 또한 청군의 진지를 의미한다. 금곡동에 철광산이 있어 금곡이
라 불렸다지만 광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청나라 군사가 마모된 병장기를 날카롭게 수
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2) 진재산 대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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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산(鎭在山) 또한 청군이 머무른 진지를 가리킨다. 광교산 동북쪽 해발 100m 미만의 낮
은 산이다. 전라근왕군을 치기 위해 청군이 진을 친 장소다. 용인시와 성남시의 경계인 동막천
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진재산 아래의 대장동에 청군의 진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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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大庄洞) 의 조선시대 이름은 태장동(胎藏洞)이었다. 태장동의 이름은 인조의 태를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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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태봉산 태장봉(胎藏峰)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태장동이 변음하여 대장동이 되었다
고 한다. 청군의 대장이 머무른 진지를 의미하여 ‘장토리’ 또는 ‘장투리’라는 지명으로도 불린다.
태봉산에 두었다는 인조의 태실은 발견할 수 없었다. 구한말에 일제가 조선 국왕들의 태실을
서삼릉으로 옮겼는데 그곳에도 인조 태실의 실체는 없었다. 정묘호란 또는 병자호란 때에 인조
의 태실을 태봉에 파묻은 것으로 추정한다. 대장동 아파트 단지 조성에 즈음하여 매몰하였을 가
능성도 열어둔다.
도-35 대장동 태봉산 도-36 홍이포(紅夷砲)
52) 진재산, 이석순 고증,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1-4
53) 대장동, 이석순 고증,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54) 태봉산, 이석순 고증,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 14-1.
광교산전투, 김준룡장군 전승지 답사기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