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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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다. 서봉사지 옆 계곡의 이름이 송장거리 다. 송장거리는 왜병 또는 호병이 스님을 살
해하여 빨래 널 듯 나무에 시신을 걸어놓은 데서 비롯하였다는 것이다. ‘서봉마을 대동청년회장’
안강현 박사의 부친 안효영(현재 94세)의 증언이다. 광교산 전투가 벌어진 것이 병자호란 때의
일이니 이 사건은 호로병이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서봉사지에서 광교산 수리봉까지의 거리는 약 690m로 가깝다. 광교산 전투 당일, 서봉사의
승려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을까? 수리봉에서 호로병을 방어하던 광양현감 최택과 그의 병
사들에게 탄환과 화약, 칼과 창, 물과 주먹밥을 공급하지 않았을까?
도-37 서봉사지 도-38 서봉사지 출토 금동보관
도-39 서봉사지 출토 마름쇠와 화살촉 도-40 서봉사지 출토 창검
(2) 창성사(彰聖寺)
광교산 창성사는 고려~조선시대의 사찰로 알려진다. 창성사지(彰聖寺址)에는 보물 제14호로
지정된 진각국사탑비(眞覺國師塔碑)가 현존한다. 고려 우왕 12년(1386년)에 진각국사 천희(千
59) 송장거리, 스님의 시신을 나무에 걸어 놓아 송장거리가 되었다고 구전한다.
광교산전투, 김준룡장군 전승지 답사기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