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3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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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60~70년대 오산장은 활황


                 오산장터(오산오매장터)의 오산식품 최병훈사장(75세) 인터뷰 채록에 의하면, 오산장의 시장
                규모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오산천 뚝방에서도 장이 서고, 그리고 오산장 안에는 노점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인근 지역에서도 장을 보러왔는데, 당시 화성 마도면, 비봉면 삼화리,
                정남면 문학리, 평택 서탄면, 송탄읍, 용인 천리, 남사면, 안성, 수원, 안양에서도 왔다고 한다.

                시장이 너무 활황이어서 소매치기도 많았다고 한다. 소매치기끼리 하는 이야기가 “오산장에서
                돈을 못 벌면 그건 소매치기가 아니다.” 라고 할 정도로 시장 장세가 좋았다 한다.                     34)



                4. 오산장터(오산오매장터)를 오랜 기간 지켜낸 업소                         35)


                 오산장터(오산오매장터)에는 수십 년에 걸쳐 영업을 이어온 상점들이 있다. 이 업소를 경영한

                사장님들은 오산장터의 산 증인이다. 오산장터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이분들에 대해 알아
                본다. 채록된 내용을 선별적으로 풀어썼다.



                1) 오산할머니집



                 4대 전통의 설농탕집이다. 오산시의 맛집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설렁탕집(소
                머리국밥집)인 오산할머니집은 문을 연지 70년이 넘는 식당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질박
                한 뚝배기에 뽀얗게 우러난 장터의 국밥은 바로 우리 전통시장인 오산장터(오산오매장터)의 대

                표적 식당이다. 오산과 이웃지역의 주민들이 5일에 한번 나와 물건을 흥정하고 사며, 장에 나
                온 김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들이키면 허기진 속을 채우고 입담 정겹게 농치고

                먹고 마시던 영락없는 시골잔치집에서 먹던 국밥인 것이다. 오산 할머니집은 일제강점기 태평
                양전쟁 말경인 1943년쯤에 1대 이일봉할머니 때 <신진옥>이란 상호로 식당을 연 이후 며느리
                인 조명분(1903~1987)할머니가 2대 할머니로 이어받아 본격적인 부흥을 이룬다. 이때 상호도

                1970년대에 <오산할머니집>으로 변경했다. 조할머니는 음식 솜씨는 물론 대쪽 같은 성품의 소
                유자로 걸쭉한 입담과 친근하면서도 회초리 같은 욕을 섞어 단골들을 휘어잡으며, 또, 손님들





                34)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오산학연구2』, 오산향토문화연구소, 2016.
                35) 『오매장터 보고서, 오매장터 이야기』. 오산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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