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9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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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원사거리(거리)
옛 화성군청(현재 롯데마트)에서 서쪽으로 300m의 거리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수원시, 남쪽
으로는 평택시, 서쪽으로는 발안으로 연결되는 사거리로 근처에 중원백화점이 있어서 붙여졌던
이름이다.
■ 오산동 지하보도(보도)
경부선 철도에 있는 지하보도로 오산동과 남촌동을 이어주는 지하보도이다. 길이가 37m, 폭
은 4m이며 1994년에 준공되었다.
Ⅴ. 오산장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에피소드
1. 오산장 독립만세운동 30)
오산장은 물건만 사고 파는 곳은 아니었다. 장에 나왔던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
고,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는 정보통의 역할도 했으며,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아야 가능한
집회 시위도 이곳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산장 우시장에서 일어난 오산독립만세운동이 대
표적이며, 오산시민들의 애국심이 높게 발현된 자존적 시위이다. 그 당시로 들어가 보자.
1919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일제의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민족말살정책, 수탈정책과 헌병경
찰제도에 맞서 한민족은 분연이 일어나 조국을 되찾기 위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민족대표 33
인의 조선독립선언으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 일으킨다. 이 현장을 목격한 오산의 세교동 출신
유진홍은 감격하여 오산에서도 이와 같이 실행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유진홍은 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에 참여하고자 상경해 있던 중이었다. 곧 오산으로 내려와
이성구, 김경도, 이규선, 정규환, 김용준, 안낙순, 공칠보 등의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규합되자 의거할 것을 모의하고 각자가 비밀리에 각 동리로 연락을 취할 것을 정하고는 독
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 준비하였다.
30) 남경식, 『오산역사문화』, 우리동네사람들, 2016. 130-132쪽.
오산장(烏山場)의 역사성과 변천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