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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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효(元曉)가 개창한 사찰
원효가 수도하거나 개창한 사찰은 매우 많다. 경주의 골굴사, 기림사, 분황사, 포항의 오어사,
군위의 인각사, 제천의 신륵사, 여주의 신륵사 등이다.
이들 중에 신승 원효가 남한강변에 세운 두 개의 神勒寺가 있다. 월악산신륵사와 봉미산신륵
사이다. 월악산신륵사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절이고 봉미산신륵사는 여주시 북내면
천송리에 있는 절이다.
17)
월악산신륵사(月岳山神勒寺) 는 제천시 한수면의 황강나루에 인접한다. 신라 진평왕 4년
(582년),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사찰이다. 그 후 신라 문무왕 1년(661년)에
신승 원효(元曉)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문무왕 1년에 중창하였다면 원효가 당주계 직산의 토
감에서 성도한 직후의 일이다. 신승 원효가 신라의 왕성으로 돌아오던 길로 판단한다.
18)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 는 여주시 여주읍 천송동의 오곡나루에 인접한다. 지금의 여주
대교가 놓인 남한강 오곡나루 부근이다.
신륵사 홈페이지는 봉미산신륵사를 신라 진평왕(579년~632년)때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기
록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원효의 출생 연도가 617년이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봉미산신륵사의 창건은 신승 원효가 신라의 왕성으로 돌아오던 때로 보는 것이 오
히려 타당하다.
원효가 남한강변에 세운 두 사찰의 이름은 神勒寺로 같다. 봉미산신륵사와 월악산신륵사로
똑같다. 또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는 원효를 神僧 원효로 기록한다.
신륵(神勒)과 신승(神僧)은 같은 말이다. 당시의 신라인들은 원효를 ‘신승(神僧)’으로 불렀고,
원효는 성불득도한 자신을 ‘신륵(神勒)’으로 여긴 것으로 판단한다.
신승 원효가 남한강변에 두 사찰을 세웠다는 것은 이 길을 지났다는 것이다. 당항성에서 계립
령이나 죽령을 넘어 신라의 왕성으로 돌아가는 당항진로를 따랐다는 근거가 된다.
2. 의상(義湘)이 개창한 사찰
의상이 개창한 사찰 또한 무수히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엄십찰이다. 667년, 봉황산 부석
17) 월악산 신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8) 신륵사(神勒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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