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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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의미한다.


                 사료 b-2는 신라 문무왕이 각간 김인문을 당항진(党項津)에 보내 당의 사자 유인궤를 맞이하
                는 장면이다. 이때 당 고종의 숙위(宿衛)로 근무하던 김삼광이 웅진도안부대사 유인궤를 수행하

                였다.
                 신라 대당외교의 전진기지였던 당성(党城)과 당항진(党項津)은 남양반도에 위치하였다. 경기

                도 화성시 남양읍, 마도면, 송산면, 서신면이다. 신라 선덕왕이 당 태종에게 백제 의자왕의 침
                략을 급보(急報)로 알린 당항성은 신라의 북진(北鎭)이자 대당포구였다.



                C. 본국(本國) 해문(海門) 당주계(唐州界)


                                                              11)
                 〈의상전(義湘傳)〉은 원효가 본국 해문 당주계(唐州界) 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록한다.


                   c-1. 나이 약관에 이르러 당에 교종이 나란히 융성하다는 소식을 듣고 원효법사와 뜻을 같이하여 서
                   쪽으로 유행하였다.
                   본국(本國) 해문(海門) 당주계(唐州界)에 이르러, 큰 배를 구해 창파를 건너려했다. 갑자기 중도에서
                   심한 폭우를 만났다. 이에 길옆의 토감(토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의 습기를 피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 바라보니 그곳은 해골이 있는 옛 무덤이었다. 하늘에서는 궂은비가 계속 내리고
                   땅은 질척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또 무덤 속에서 머물렀다. 밤이 깊기 전에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놀라게 했다. 원효법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전날 밤에는 토굴에서 잤음에도 편안하더니 오늘밤은 귀신 굴에 의탁하니 근심이 많구나! 알겠다.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것들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감과 고분이 둘이 아닌 것을, 또한 모든
                   세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요, 모든 존재는 오직 인식일 뿐임을, 마음 밖에 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
                   하랴.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소.”

                   이에 원효는 바랑을 메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의상은 홀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상선(商船)에 의
                   탁하여 등주(登州)에 도달하였다.


                 사료 c-1은 원효가 성불득도한 장소를 가리킨다. 여기서 본국 海門은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청원리의 해문을 가리키고, 당주계는 남양반도의 바닷가를 가리킨다. 다음은 <남양지방도>가





                11) 당주계(唐州界), 『송고승전(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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