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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浦)로 불렸다.



                 3. 당성(党城,唐城)은 신라의 당항성과 통일신라의 당은군을 관리하던 치소이다. 또 신라의
                당항진(党項津)과 통일신라의 당은포(唐恩浦)를 호위하던 주장성이다.








                Ⅲ. 신라의 당항진로





                A. 선덕왕 때의 신라 토경과 정치 상황



                 삼국사기는 진평왕과 선덕왕 때의 정치 상황과 신라의 토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a-1. 진평왕 53년,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모반하였다. 이에 왕이 칠숙을 잡아 동시(東

                   市)의 저자거리에서 목을 치고 구족(九族)을 처형하였다.


                   a-2. 선덕왕 11년 7월에 백제왕 의자(義慈)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 서쪽의 40여 城을 공격하여
                   빼앗아갔다.


                   a-3. 선덕왕 16년 정월에 비담(毗曇)과 염종(廉宗) 등이 서로 말하기를 ‘왕은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
                   하고 이내 모반하여 군사를 일으키다가 이기지 못하였다.



                 사료 a-1은 덕만을 왕으로 세우려는 진평왕의 생각에 반대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이찬 칠숙은 신라 골품제도 2등급으로 진골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이다. 화백회의를 이끌어

                가는 상대등에 임명되어 왕권과 귀족 사이의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상대등의 위치에 있던 이찬 칠숙이 진평왕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진평왕이 칠숙을
                잡아 동시(東市)의 저자거리에서 목을 치고 구족(九族)을 처형하였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신라

                왕정은 분열과 추락을 거듭하였다.
                 사료 a-2는 백제 의자왕이 신라의 토경을 공취한 사건이다. 의자왕이 빼앗은 40여 城은 신라
                영토의 약 1/3에 해당하는 크기였다.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북도, 경상남도가 백제의 토경으로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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