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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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갔다. 551년, 신라 진흥왕이 차지한 竹嶺 이북 高峴 이남의 10郡도 백제의 영토가 되었

               다. 신라 왕정의 끝없는 분열과 국방을 모르는 여왕의 치세에 군령도 제대로 서지 않던 때였다.


                사료 a-3은 상대등 비담과 귀족 염종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사건이다. 이찬 김춘추와 상장

               군 김유신이 선덕왕을 도와 비담과 염종의 무리를 잡아 처형하였다. 이 사태의 와중에 선덕왕이
               병으로 죽었다. 이후 진덕왕 대에 이르러 신라 왕정의 분열은 진정하는 기미를 보였다. 이찬 김

               춘추와 상장군 김유신이 대당 외교와 국방 정책을 이끌었다.


               B. 당항성(党項城)과 당항진(党項津)



                                       9)
                                                       10)
                삼국사기는 당항성(党項城) 과 당항진(党項津) 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b-1. (선덕여왕 11년) 8월에 또 (백제가) 고구려와 공모하여 당항성(党項城)을 빼앗아 (신라의) 당에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어 당태종(唐太宗)에게 급함(急,急難)을 알렸다.
                  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대야성을 쳐 함락시켰다.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전사하였다.


                  b-2 문무왕 8년 6월 12일, 웅진도안부대사(熊津道安撫大使) 유인궤가 唐主의 칙지를 받들어 숙위인
                  사찬 김삼광(金三光:유신의 장자)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니, 왕이 각간 김인문으로 하여금

                  가서 大禮로써 영접하게 하였다.

                사료 b-1은 당항성(党項城)을 빼앗은 백제 의자왕이 신라 선덕왕의 대당 입조의 길을 끊었다

               는 것이다. 죽령과 계립령을 넘어 당항성으로 이어지는 육로와 수로를 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경기도가 고구려와 백제의 토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덕왕 11년, 대야성주 김품석은 부하 장수 검일의 아내를 빼앗았다. 이에 검일은 백제와 내

               통하였고 제장 윤충은 대야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대야성 전투에서 김품석의 아내 고타소랑(古
               陀炤娘)도 죽었다.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함락시켰다는 것은 지금의 경상남도 지역도 백제의 토경이 되었





               9) 당항성(党項城), 삼국사기(상), 을유문화사, 김부식지음 이병도역주. p117.
               10) 당항진(党項津), 삼국사기(상), 을유문화사, 김부식지음 이병도역주. p153.



               148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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