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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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근거로 당성의 4개 성문 가운데 3개 성문이 서쪽 화량만(花梁灣) 방향과 통한다.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 행위가 이루어진 망해루지(望海樓址)의 중심이 화량만 쪽으로 기울었다.
                여말선초에 화량만에 수군 기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대의 포구로서 화량만의 입지가 매우 뛰
                어났음을 들었다.



                 <분석> 정진술은 군사학적인 입장에서 신라 당은포의 위치를 은수포(銀樹浦)에 비정하였다.

                은수포는 통일신라의 당은포로 추정되는 여러 포구 중에서 당성(唐城)에 가장 가깝다. 당성에서
                불과 1.4km의 매우 가까운 거리다. 그러므로 그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효와 의상이 입당유학에 나선 시기의 명칭은 당은포가 아니라 당항진이었다. 정진

                술은 문무왕 때의 당항진(党項津)과 경덕왕 때의 당은포(唐恩浦)를 동일한 장소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다른 신라의 당항진과 통일신라의 당은포는 다를 수도 있다.



                C. 대당항로(對唐航路)


                                                                     8)
                       7)
                 윤명철 은 제2회 화성불교문화유적 학술발표회에서 대당항로  및 내륙수로를 다음과 같이 제
                시하였다.
                 하나, 環 황해 연근해 항로이다. 당(중국)의 남쪽 절강성에서 산동반도-요동반도-압록강 유

                역-서한만-대동강 하구-경기만-서남해안-남해안-대마도-북큐수로 이어진 긴 항로이다. 역
                사의 초창기부터 이용됐던 가장 오래된 항로이다.
                 둘, 황해 중부 횡단항로이다. 『신당서』 권 43 지리지에 인용된 가탐(賈耽)의 도리기(道理記)의

                기록이다. ‘登州東北海行, 過大謝島, 龜島, 末導 島湖島三百里―浿江口 椒島 得新羅西北之長口
                鎭, 又過 秦王石橋, 麻田島, 古寺島, 得物島, 千里之鴨綠江唐恩浦口, 東南陸行, 七百里至新羅王

                城’이다.
                 셋, 황해 남부 사단항로 및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 이 항로는 충청도 해안과 전라도의 일부
                해안을 출항하였다. 백제를 거쳐 신라,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황해 남부

                사단 항로 및 동중국해 사단 항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기록한
                「고려도경」이다.





                7) 윤명철, 역사학박사, 해양탐험가, 고구려 및 동아시아 해양사 전공,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8) 대당항로(對唐航路), 원효의 오도처 화성 당성 : 삼국시대 지정학적 및 사상적 위상, 2018.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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