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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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學榮先生追慕碑
三美生長(삼미생장) 性本仁厚(성본인후)
普渡慈航(보도자항) 濟衆先志(제중선지)
創設義塾(창설의숙) 慕聖敦行(모성돈행)
鰲山域濶(오산역활) 鶴洞校高(학동교고)
庶土交正(서토교정) 祗台德先(지태덕선)
不忘其蹟(불망기적) 立石追慕(입석추모)
固城后人 李圭榮 選書
우선하여 한문의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삼미에서 나고자랐으며 성품이 본래 어질었
다. 하여 자비심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핌은 널리 미쳤고, 민중들을 구제함에 뜻을 두셨다.
그리하여 삼미의숙을 창설하시었고 성현을 흠모하고 현양하기를 돈독히 하시었다. 이로써 오산
지역을 발전시키는 일에 열심으로 애를 쓰셨으니, 그 가르침이 높기만하다. 이 지역을 두루 바
르게 하셨고, 덕을 베풀기를 솔선하셨으니 공경하는 마음 별과 같다. 이에 그 자취와 뜻을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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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잊지 않기 위하여 그리운 마음을 돌에 세기고 세운다.”
추모비문의 내용과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듯 윤학영선생이 삼미의숙을 설립하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은 지역의 발
전을 위하는 마음 하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은 해평윤씨 종중의 뜻을 모았고 지역의 유지들과 뜻을 함께 하였다. 그러니
삼미의숙은 지역을 통합하고 뜻을 함께 하면서 오산의 교육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윤학영선생이 1920년대 삼미의숙을 설립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가 한학과 신학문에
밝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확인하였던 바와 같이 용인의 서천리 처삼촌 권태동과 같은 동네 태장
초등학교를 설립한 해주오씨 집안의 오성선과 교류하면서 구체적인 사회사업이자 농촌계몽운
동의 실천으로 삼미의숙이 설립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을 위해 생각하고 고장을 위해 일하신 분! 사셨던 세상에 끼침이 크셨고 가셔선 후세
17) 우선하여 이렇게 해석하여 두고 다시 살피면서 뜻을 보다 정밀하게 바로잡고자 한다.
三美義塾 設立의 意義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