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오산학 연구 4집
P. 140
나오는 말
삼미의숙은 오산시의 교육철학을 어디에 두어야 교육도시 오산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지?
그 준거를 마련하여준다고 판단된다. 우선하여 윤학영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해평윤씨 종중의
지지를 받아 삼미의숙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한 일, 그리고 삼미의숙을 통하여 지역을 교화하
고 교육만이 무지와 가난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임을 확인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삼미의숙의 설립은 광성학원의 설립으로도 이어졌을 것이라 추단한다. 당시 세교리의
최촌말, 원촌말, 홍촌말의 유지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광성학원을 설립하였을 것이다. 이는 당
21)
시의 신문기사를 통하여도 짐작할 수 있다.
하여 이번 필자의 논문을 계기로 하여 특히나 일제강점기 오산의 교육환경과 사회사업, 농촌
계몽운동으로써의 오산의 지형을 바로세웠으면 한다. 일면 몇몇 가문의 영광이겠으나 한편 오
산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되리라 여긴다.
그리고 오산시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지침도 목표도 근거도 철학
적 배경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의 하나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신문기사다.
22)
1929년 오산에서는 가극대회(歌劇大會) 가 펼쳐졌는데 이러한 기반은 오산의 문화적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분명 거기에는 부산동의 경기재인청에서 영향받은 바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21) 光成學院後援會
水原郡 城湖面 細橋里 光成學院은 創立한지 不過月餘에 成績이 매우 良好한바 此際에 學父兄側에서는 一層 奮發하야 完全한
兒童敎育機關을 만들고저 去 二十二日 下午 三時에 該學院에서 後援會를 組織하엿는바 被選된 任員은 如左(烏山) 會長 崔俊敏
幹事 崔武喜 金基桓 韓喆洙 顧問 洪鍾協 書記 洪殷表 會計 洪淳克 - 동아일보 1925년 5월 25일자
22) 烏山歌劇大會
(오산)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水原郡城湖面烏山里)에 잇는 공립보통학교에서는 하기방학을 리용하야 남녀생도 이십여명을 선
출하야서 가극 삼십여종을 련습하야 오든바 오는 이십일 오후 팔시부터 교정에 가극단을 베풀고 일반시민 위안대회를 개최한
다더라. - 동아일보 1929년 8월 18일자
138 김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