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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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사실을 또 다른 방법으로 증명한다. 중국의 한자 발음으로 부여扶餘는 부예Buyǔ
이다. 한국어의 음가 ‘餘yeo’를 중국어는 예yǔ로 발음한다. 그러므로 백제 침류왕 여전餘田?을
왜 응신천황 예전譽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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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 石渡信一郞 , 渡辺光敏, 林順治 등도 倭 응신천황應神天皇을 백제인이라고 주
장한다. 그들이 쓴 저서에서 왜왕 응신천황 예전譽田을 백제 도래인으로 기록한다. Yahoo
Japan에서 검색되는 응신천황(침류왕) 예전(여전)의 모습은 사진과 같다.
백제 침류왕 여전餘田이 왜 응신천황 예전譽田이라는 사실을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미 알
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입으로 말하지 않는 불문율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왜 응신천황 예전譽田이 백제 침류왕 여전餘田이었다고 확신한다.
백제도래인 응신천황 응신천황(침류왕) 예전(여전)
고구려 광개토왕은 백제 이잔의 정토에 수륙양면작전을 구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서해
로는 수군을 궁솔하여 인천에 이어 경기도와 충청도 해안을 점령하고, 육지로는 기병을 교견
하여 강원도와 경상북도와 충청도를 공취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AD 397년, 백제 아신왕의 태자 직지直支는 왜국에 화친사절로 들어갔다. 그가 왜국에 화친
사절로 들어간 사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AD 396년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빼앗긴 백제 이잔의
58성 700촌을 찾으려는 의도였다. 왜왕 응신천황 예전과 백제 아신왕 여방이 연합하여 고구
려를 물리칠 제·왜연합군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열도로 들어간 백제 아신왕의 태자 직지直
35) 百濟から渡來した應神天皇 騎馬民族王朝の成立,石渡信一郞 著, 三一書房,2002.
독성려왕릉禿城麗王陵의 정체에 대한 小考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