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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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광주목사 권율은 검은 말 몇 필을 장대로 끌어 올려 말 잔등에 흰 쌀을 끼얹어 목욕을 시키도
록 하였다. 그러자 멀리서 이 장면을 목격한 왜장은 깜짝 놀랐다. 왜장은 성안에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많다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그 후 나라에서는 도원수 권율의 전승을 기념하여 독산성에 세마
대(洗馬臺)를 세우고 병기 창고를 두어 군사훈련지로 삼았다. 산 이름도 세마산으로 개칭하였다.
독산성에 있는 보적사는 백제시대의 절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수축되었다고 전한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많은 해였다. 이때에 보적사 경내의 바위틈에서 쌀알이 물처럼 솟아 나와
굶주린 고을 백성을 구제하였다. 그래서 절의 이름이 보적사(報積寺)라고 칭명하였다고 한다.
위의 기록에서 독산책이 바로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독산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보적사 경내의 바위틈에서 쌀알이 물처럼 솟아 나와 굶주린 고을 백성을 구제하였다’는 기록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흉년이 들어 고을 백성이 굶주리므로 독성산성의 사창에 보관하였던
쌀을 풀어 고을 백성을 구제하였다는 것이다. 독성산성의 독禿은 쌀독을 의미하는 독산으로
최초 백제의 토성이었다는 사실이다.
독성산성 동문 독성산성 서문
② 구원狗原의 위치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구원狗原이 어디인가를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
나 필자는 백제 진사왕이 머문 구원狗原을 지금의 수원水原으로 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백
제 온조왕이 낙랑과의 교통을 막기 위하여 독산禿山과 구천狗川에 책柵을 세웠다는 기록에 근
거한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독산禿山과 구천狗川의 지명이 지금도 독산禿山과 황
구지천黃狗之川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황구지천皇口之川,黃狗之川의 본래 이름은 구천狗川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화산릉 행차에 이르러 구천狗川은 황구지천皇口之川으로 개칭되었다.
구천이 황구지천으로 개칭된 것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가던 화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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