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2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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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역이다.
부산동에는 ‘가마뫼’는 ‘가마미’라고 부르며 마을의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하여 부르던 것
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부(釜)’자를 썼다고 한다. ‘새말’은 큰말이라 불린 부산동이 마을 앞쪽
산 밑에 있었으나, 점차 현재의 마을로 옮겨져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고 한다. ‘개량굴’은 부산동의 북쪽 마을로 현재 롯데연수원이 있는 일대의 마을로 새말에 비해
잘 고쳐졌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 부산동에는 부산, 말등산, 매미산, 불탄디, 봉바위, 농바위, 사근적골, 당집, 새말고
개, 두께우물, 순우물, 웅굴, 박적골, 불당굴, 나부재, 장기혈, 섭들, 방죽들, 꽤갓, 나부, 육곡
불, 문앞들, 달맞이고개, 호랭이굴, 부산동저수지 등의 땅이름 관련 이름들이 전해 오고 있다.
한편 부산동에는 남양 홍씨와 경주 이씨, 풍천 임씨가 대성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이들 성
씨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면서 산신제를 지내고, 장승을 깍아 세우면서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였다. 지금도 그러한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화목하게 살고
있다. 일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6.25 때 이곳 부산동으로 후퇴하여 들어와 북한군과 전투를
치르다가 나무 뒤에 숨어 총탄을 피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오산시의 구비전승과 민속을 조사하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채록할 수 있었다. 조
선 후기 ‘경기재인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동 일대는 예전에는 소리꾼을 길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며, 유명한 단골무당이 3명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단
골무당은 지씨(지삼룡), 이씨(이용우, 원래 이름은 이남북), 신씨(신경식)였다. 지씨는 자전거
를 뒤로 타고 다닐 정도로 서커스를 잘했으며, 이씨는 피리불고 소리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씨는 상쇠잡이로 유명했다.
2. 부산동의 산신제
마을신앙은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 경기도의 마을신앙과 서울의 마을신앙이 차이를 보이
며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등도 이와 같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니 마을신앙이 어떻게 전승되
었는가는 그 지역의 문화가 어떠한 차이를 보였는가 하는 것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부산동의 산신제에 대하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한국의 마을제당』제 1권 서울·경
250 김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