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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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은 3차례의 학술지표조사와 3차례의 시굴조사, 그리고 2017년부터 현재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출토유물 삼국시대 단각고배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인화문토
기편, 고려시대 청자와 함께 조선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수차례
의 증축과 수축·개축으로 인해 삼국시대 문화층은 거의 파괴된 상태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성
벽 하부에서 신라~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성벽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암반층을 계단상으로 정지한 이후 그 상면에 성벽을 축조한 구조로 후대 성벽이 들어
서면서 성벽 상부가 모두 삭평되어 내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 외측으로 목주흔이 확
인되었으며, 그 상부에 보축성벽이 1단 남아 있다. 외벽 면석은 2~4단이 잔존하였고, 직사각
형의 면석을 ‘品’자형으로 바른층쌓기 하였으며 잔존 높이는 약 0.9m 정도이다. 면석은 두 가지
형태가 혼재하였는데, 15~20cm×50~60cm 정도의 직사각형 면석을 쌓은 구간과 30~35cm
정도의 사각형 면석을 사용한 구간이 존재한다.
성 내부 조사에서 확인된 신라~통일신라시대 유
물은 많지 않은데, 주목할 만한 것은 2000년도에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재연구원(현 경기문화재연
구원)에서 실시한 시굴조사이다. 당시 북벽의 성
외 체성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북문 동벽 외측으로
폭 2m, 길이 약 10m 정도의 시굴트렌치를 설치하
여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성벽의 기단부로 추정되
는 석렬이 복원성벽 하단 약 4m 정도의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더불어 80~90cm×50~60cm 정도
의 장방형 면석을 사용하여 성벽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외측으로 높이 1m, 폭 2.5m 정도
의 평탄대지가 성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그림 14. 독산성 출토 ‘水’자명 기와
러한 시설이 서문 쪽에서도 확인되어 조사단은 성 (畿甸文化財硏究院 2001)
문을 위한 시설이나 방어시설로 추정하였으나 정황상 성벽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설에서 다량
의 기와편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를 폐기층으로 해석하였다. 이 트렌치에서 수습한 유물은 연
질의 승문토기 및 시루 손잡이, 인화문토기, 철제 가위, 꺽쇠, 기와, 백자 등이다. 그 중에서 황
갈색의 암키와편은 사방향의 선문이 타날되어 있으며, 배면에 굵은 포흔이 남아 있었고, 등면에
‘수(水)’자 명문이 타날되어 있었다. 명문은 따로 구획을 마련하지 않고 등문양에 바로 겹쳐서 타
날하여 표현하였다.
신라~통일신라의 오산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