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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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수성군의 중심, 오산





                이상 오산 독산성과 양산동 유적의 조사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몇 가

               지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수성군’ 치소의 위치이다. 앞서 한강유역의 산성과 오
               산 독산성을 분석한 결과 신라가 오산지역을 점령한 이후 독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

               다. 즉 신라는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군사·행정의 거점인 산성을 축조하였고, 통일 이전까
               지 치소로 활용하였다. 또한 통일 이후에도 성을 수리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근거로
               4차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성벽과 성 내 출토유물을 제시하였다. 경덕왕 대에는 이 지역이 ‘수

               성군’으로 개칭되었고, 행정치소의 일부 시설이 산성 밑으로 이전하여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둘째는 수성군의 강역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삼국시대 신라 산성은 약 20~30km 정도의 거

               리를 두고 축조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군현의 사정에 맞게 치소가 이동하기도 하지만, 대
               부분 이전 시기의 산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 치소간 거리가 일정한 편이
               다. 이로 인해 산성을 중심에 둔 반경 10km 이내에 분포하는 유적들을 해당 치소와 관련된 마

               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인지는 전국의 유적을 대상으로 비교해야 하지만, 적어
               도 한강유역 즉 서울·경기지역 내에서는 위와 같은 현상이 관찰된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수

               성군(독산성)이 관할하는 지역은 오산시를 포함하여 남쪽으로 평택시 진위면, 북쪽으로 수원시
               매산동, 동쪽으로 화성시 동탄지구, 서쪽으로는 화성시 봉담읍과 향남읍 일부까지 포함된다. 더
               불어 평택 진위면 일대가 고구려 부산현(釜山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대 진위로 고쳐 수성군

               의 영현으로 삼았다는 문헌의 내용을 통해 보았을 때 이러한 가설은 일견 타당성이 있는 듯하
               다. 특히 삼국~통일신라시대 평택지역의 중심지역이 자미산성이 위치한 청북읍·안중읍 일대

               로 추정되며, 서쪽의 화성지역은 당성, 북서쪽 안산지역은 성태산성, 북동쪽 용인지역은 할미산
               성 및 마북동 유적군, 남동쪽 안성지역은 비봉산성·망이산성·죽주산성 등을 중심지로 보았을
               때 수성군의 영역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영역구분은 행정구역 내

               중심부에 사방의 조망이 용이한 지역에 산성(치소)를 설치하고, 외곽은 자연지형인 산세를 이용
               하여 구역 내부에 경작지와 하천, 사람이 살 수 있는 구릉지를 마련하기 위한 당시의 도시계획
               으로 추정되는데 향후 이 시대의 유적이 좀 더 확인되고, 연구 성과가 축적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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