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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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의 경우 단각고배, 뚜껑, 대부완, 연질의 옹호류, 파수, 벼루 등 기종이 다양하며, 시기
                는 6세기 중반에서 8세기에 걸친 긴 시간의 것이 모두 확인되었다. 대체적으로 이른 시기의 유
                물이 적은 편이고, 8세기의 것들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른 시기의 유물은 대각

                의 투창이 시문된 단각고배류와 연질의 완류, 호류의 파편 등이다.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대표적
                인 토기인 인화문토기는 문양대가 다양하게 확인되는데, 7세기 전반에서 8세기 대까지 유행하

                는 수적형문, 마제형문, 점열문 등이다. 토기의 전체 수량이 488점에 이르며, 오산시 내에서 확
                인된 유적들 중 압도적인 수량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명문토기들이 출토된 점이 주
                목되는데, 인화문토기 뚜껑의 내면에 ‘화산(華山)’, ‘염(塩)’등이 음각되어 있었고, 대부완 내면에

                ‘천(川)’과 ‘수□(水□)’, 대옹 외면에 ‘정(井)’, 그리고 원형토제품에 ‘란(卵)’이 새겨져 있었다.
                 더불어 좁은 유적범위 내에서 다종다량의 철기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농구류는 기경구, 중
                경구 및 수확구가 모두 확인된다. 기경구는 주조괭이편과 보습편이 있다. 이는 당시 농법이 보

                습을 이용하여 심경(深耕)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경이 실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경구인 살포는 1점이 출토되었으며, 수확구로는 낫이 출토되었다. 공구로는 철제
                도자가 확인되었고, 철촉과 찰갑편 등의 무구류도 확인되었다. 또한 차관편과 솥편, 집게형철기

                등 다양한 철기들이 확인되었다. 중요한 것은 유구 내부에 목탄들이 국지적으로 분포하고 있었
                으며, 수혈 내부 토양에서 미량의 단조박편이 검출되었다는 점이다. 삭평과 재퇴적 등으로 인해

                단야로나 송풍관, 단야도구 등 단야작업과 관련된 유구 및 유물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출토양
                상을 보았을 때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 내용을 통해 보았을 때 양산동 유적은 일대의 중심지 혹은 치소의 성격이 강한 시설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 내면에서 발견된 ‘수□(水□)’자는 수성군의 수성(水城)일 가
                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산성에서 발견된 ‘수’자명 기와와도 같은 맥락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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