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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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를 보면 집 밖으로 연기가 나갈 수 있도록 장치를 시설한 흔적이 보인다.

                신라~통일신라 집터의 구들 형태는 ‘ㅡ’자→‘ㄱ’자→‘T’자의 순서로 변화한다고 보고 있다. 탑
               동·두곡동 유적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로 볼 수 있는 ‘ㅡ’자 형태의 구들시설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가수동, 가장동 등 주변에 분포하는 마을유적보다 시기가 늦은 편이다. 집터 내에서는

               대부완, 완, 시루 및 호류의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수량은 많지 않다. 이 외에 소량의 기
               와, 방추차, 숫돌, 석제 저울추, 철제 주조괭이, 철제 차관 등이 출토되었다. 이 중 시기를 파악

               할 수 있는 유물은 5호 집터에서 출토된 시루인데, 다른 개체에 비해 형태가 온전하다. 바닥은
               평평하고 몸체는 원통형이며 입구는 짧게 벌어진 형태이다. 바닥에는 원형의 증기공이 뚫려있
               는데, 중앙의 증기공을 중심으로 6개의 구멍이 방사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몸체에는 띠모양 손

               잡이가 부착되어 있고 집선문이 관찰된다. 이러한 시루의 형태는 한강 유역 출토품을 통해 보았
               을 때 9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함께 3호 집터에서 출토된 인화문토기는 중앙의
               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점을 찍어 돌린 꽃 혹은 해 모양의 문양으로 인화문이 유행하던 시기인 8

               세기 대의 전형적인 문양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보았을 때 탑동·두곡동 유적의 통일신라시
               대 마을유적은 8세기 경~9세기 전반에 걸쳐 영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8. 탑동·두곡동 유적 통일신라시대 3호 집터 출토 인화문토기(기호문화재연구원 2013)




               80  강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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