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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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해당 유적에서 확인된 단각고배류는 7세기 초까지 사용

               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에 조성 시점이 7세기 대로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 하한은 삼국통일기인
               7세기 후반으로 보고되었으나, Ⅵ-4호 집터에서 출토된 뚜껑에 시문된 인화문을 통해 보았을
               때, 하한은 8세기 초업까지 볼 수 있다. 즉 오산지역에 처음 신라인들이 들어온 후, 가수동 유적

               을 조성한 주민들이 통일신라시대까지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
                더불어 다수의 집터가 확인된 유적은 서경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가장동 유적 이다. 석산
               (해발 135.3m)의 정상부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노적봉(해발 160.3m)에서 동남쪽으
               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지점의 곡간부 및 능선부를 포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유적에서
               는 집터 9기가 확인되었는데, 5-4지점 4기와 7지점 4기가 군집하여 위치하며, 5-5지점 1기는

               단독으로 위치하였다.
                집터는 대부분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는데, ‘ㅡ’자·‘ㄱ’자·‘T’자 형태가 모두 관찰된다. 이는
               군집된 집터의 경우 시간차를 두고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유물은 5-4지점 3호 집터의 철촉, 7지점 2호 집터의 철촉 및 1단투공 단각고배이다. 각 지점 두
               기의 집터 이외에 다른 집터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점으로 추정되는데, 토기
               편만 확인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파상문이 시문된 대옹 경부나 침선+격자문이 시문된 호 저부

               등 대형 토기의 파편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동 유적은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에 처음 조성된 이후 통일신라 대까지 영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4. 가장동 유적 5-4지점 2~4호 집터(서경문화재연구원 2013)




               2) 서경문화재연구원, 2013, 『오산 가장동 유적』



               76  강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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