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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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독산성의 가치성 검토
앞서 살펴보았듯이 오산 독산성은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하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
역 거점성의 역할을 담당한 군사·행정의 중심지였다. 그간 독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처음 성
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그러한 사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부 기록과 지표조사를 통
해 성 내외에서 수습된 유물만으로 운영 여부를 추정해 왔다.
다만 오산과 오산천 유역, 인근 화성시에서 확인된 백제의 중앙과 연관된 지방의 거점성, 취
락유적, 저장·창고시설, 대규모 분묘유적들을 통해 볼 때, 오산천 유역은 한성기 중앙과 지리
적으로 인접하고 있어, 백제의 지방 거점이 주로 교통의 결절지에 조성되는 경향성을 볼 수 있
다. 백제시대 독산성의 구체적 실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으나 이러한 주변 유적의 분포를 통
해 볼 때, 조선시대에 높게 평가된 독산성의 육로 및 수로의 수륙양용적 지리적 이점은 백제시
대부터 유효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독산성의 성곽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 초축시기 원성벽과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의
성벽을 확인하여 독산성이 축조시기와 운영에 대한 일부 실마리를 일부 찾을 수 있었다. 독산
성에서 확인된 삼국시대의 성벽은 현재 남아있는 외벽이 2~4단뿐이므로 정확한 양상을 알 수
는 없었으나, 삼국~통일신라시대에 걸치는 선문계 와편의 출토 유물과, 남문 평탄지 일원에 대
한 발굴조사 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대부완, 연화문 수막새 편 등과 함께 볼 때 7세기 중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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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8세기 후반까지의 시기의 운영양상을 추정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삼국시대의
한강유역은 삼국의 각축장이었으므로, 서울·경기지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석축산성의 축조
기법과 그에 따른 주체세력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학자들 간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계속되
고 있다. 현재까지 독산성에서 발굴조사를 통해서는 백제의 성곽 축조와 관련된 뚜렷한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성 내에서 이루어진 그간의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 등을 통해 백제·신라의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에 독산성의 확실한 축조 주체를 현재 단정 짓에는 것은 무리가 있
다. 이는 향후 독산성의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독산성전투를 통해 호남과 한양, 행재소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보호하여 그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었다. 독산성 전투에서의 승리는 권율장군에게 거점 확보와
전술적, 전략적 경험 및 자신감을 얻게 하여 행주대첩을 대승을 거둘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
73) 앞의 글(중부고고학연구소·한신대학교박물관, 2019)
60 김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