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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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山谷), 도림산(道林山), 도덕현산(道德峴山), 아지락산(我芝樂山), 내삼미리(內三
美里) 주막곡산(酒幕谷山), 오산면(烏山面) 원리(園里) 선두곡(先頭谷), 청호면(淸湖
面) 원당후산(元堂後山) 마장평(馬場坪)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피나무
재산, 도둑재고개, 사자골, 청량골, 감주물 등의 지명에 대한 구술자료도 추가로 조
사할 수 있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는 거펑이, 겁퍼이라 불리는 거평곡(去坪谷), 석
산곡(石山谷), 노랑굴이라고도 불리는 노랑곡(老狼谷)의 지명 등을 확인할 수 있었
다.
* 애기바위전설
여계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옛날 임진왜란 때 아기가 숨어 있는 바위를 톱으로 잘
라 애기를 죽인 바위로 지금도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바위에는 애달
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암동은 예전에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길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임
진왜란 때에 왜군이 금암동에 들어와 약탈을 하였다. 이때 왜장은 풍수에 밝은 사
람이었는지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큰 인물이 태어날 지형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어린 사내아기들과 임산부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을 뒤져 마구
잡이로 살생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한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마침 아
들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아기를 감추고 자신이 희생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는 일부러
임산부처럼 배에 바가지를 넣고 마을을 활보하였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왜병들
과 만나게 되었는데 왜장은 이 부인이 이미 어린애를 낳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아기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자 부인의 칼로 배를 자르게
하였다. 짐작대로 부인의 배에는 엎어 놓은 바가지가 나오자 부인을 살해했다. 그리
고는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하였으나 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기 엄
마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렸다. 왜병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큰 바위 밑에서 들려 왜병들이 바위를 치우려
했으나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장은 부하들을 시켜 바위를 톱으로 자르라고 하
였다. 톱으로 바위를 자르기 시작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얼
마 후 바위는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에서 선혈이 낭자한 아기의 시체가 나왔다. 결
국 왜병들은 마을의 아기들과 임산부를 모두 살해하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에서는 애기바위의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왜군의 잔혹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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