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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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미(마을)
원래는 동네 주변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아서 소나무골, 즉 송리(松里)라 불렸다.
조선 정조 임금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태안, 현 융릉)
으로 천봉할 때 행차하여 경기관찰사에게 마을 이름을 물었는데 ‘문시면 송리’라고
아뢰니, 정조 임금이 화산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며 “문시에는 오동나무, 죽미에는
대나무, 삼미에는 소나무가 아름답고 많으니 삼미(三美)라 부르라.”라고 하여 삼미
가 되었다 한다. 그중 마을 안쪽을 내삼미, 바깥쪽을 외삼미라 부르게 되었는데,
『수원부읍지』에 의하면 1789년(정조13)까지는 삼미면 또는 삼미곡면으로 기록하
고 있어 삼미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하나의 면(面)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내삼미(마을)
안삼미, 안삼미실, 안삼미곡, 안삼며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모두가 삼미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내삼미 지역은 경주 김씨와 용인 이씨의 세거지로 이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오미(마을)
삼미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 다섯 가지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으로 현재의 오산시 전체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삼미의 원동(園洞)에는 아름다
운 동산에 꽃밭이 아름답고, 초평에는 석양에 아름다운 물을 가리켜 부른 것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원동(지금의 대원동) 일대에는 동산에 꽃이 만발하여 보기가 좋았
고, 초평으로는 지금의 오산천에 배가 들어올 정도로 물이 많아 석양에 바라보는
초평 쪽 오산천의 물이 무척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 큰말(마을)
내삼미1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 양짓말(마을)
내삼미1동의 북쪽 반달산 밑의 마을로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
며 큰말의 북쪽에 있어 웃말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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