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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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의  논으로  논이  뚝처럼  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넘어궁터(마을)



                  궁터의  남동쪽으로  고개  너머에  있는  궁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건너궁터(마을)



                  마을의  북동쪽으로  마을  건너편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방아다리개울(천)



                  마을  앞의  개천으로  예전에  방앗간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예전에  이곳은  징검다
                  리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궐동에는  옛날부터  연안  김씨,  광산  김씨,  곡부  공씨  등이  대성을  이루며  마을
                  을  형성하였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을
                  찾아보기가  거의  힘들다.  특히  대호밭에  사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장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는데,  호랑이의  출몰과  관련하여  모두  폐

                  가  하여  이제는  장씨  집안사람들을  볼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외에  궐동에는  풍
                  목골,  증산골,  석산골,  독골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다.  궐동에  전하는  땅이름  가운
                  데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화성궐리지』를  들  수가  있다.『화성
                  궐리지』에는  당시  이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중규면(中逵面)이라고  기록되어  있
                  으며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  구정촌(九井村)이라는  명칭을

                  비롯하여  문공산(文公山)의  지명이  나온다.  문공산은  오산화성궐리사의  뒷산인  문산
                  (文山)과  오산대학교가  들어선  자리의  공산(公山)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던  것으로  보
                  인다.  그리고  공씨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공촌(孔村)이라는  지명도  나타난다.『곡
                  부공씨족보』에는  죽정이골,  죽쟁이골이라  불리는  죽정곡(竹靜谷)이라는  지명이  나
                  오는데  이  지역에는  소도둑이  소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초평

                  (草坪)  죽정곡(竹靖谷),  초평(草坪)  궁허리(弓墟里),  독동(篤洞)  후곡(後谷),  삼미면
                  (三美面)  온정동(溫井洞)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금암리(錦岩里)에는  토끼산
                  이란  의미의  묘산(卯山)도  기록되어  있다.  한편  문산(文山)을  민간에서는  당고개(堂
                  峴:당현)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  동탄면(東灘面)  금곡리(金谷里)  당곡(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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