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6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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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게 되어 학교는 점점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편 교실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사회에서
는 귀속재산관리위원회와 교섭 끝에 오산에 있는 전 동산농장 창고를 개조하여 임시교사로 사
용하기로 합의하고 즉시 개조공사에 착수하여 9월 12일에는 공사가 준공됨에 따라 새 교실로
이전하게 되었다. 임시교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립된 교사, 교실이 마련된 기쁨으로 학생들
은 뛸듯이 기뻐하였다. 창고 주위에는 꽤 넓은 공터가 있어서 정규 운동장 규모는 아니지만, 운
동장으로 사용할 만했고 농장관리인이 사용하던 사택은 교장 사택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사택
에 붙어 있던 관리 사무실은 학교 교무실 겸 사무실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1949년 9월 13일에는 신학년도 시업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는데, 1학년 담임에는 김규철, 2
학년 담임에는 이기춘교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동시에 성호초등학교 교사들은 강사직을 사임한
다. 다만 이병숙 교사만 여학생들의 지도를 위해 계속 남아 있기로 하였다. 9월 15일이 되면 유
시형 교장이 전임함에 따라 고등공민학교 교장직도 사임하게 되었고, 이봉상 강사도 서울로 복
귀하며 강사직도 사임하였다. 그리고 교육위원회에서는 인사권을 설립자에게 완전히 일임하였
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이사회를 개최하여 의논한 결과 당시 성호초등학교 교감이었던 서영석을
영입하였다.
서영석은 덕망 있는 분으로서 오산사회에서는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장차 오산중학교를
설립할 때 교장으로 임명한다는 조건하에 우선 성호고등공민학교 교장으로 1949년 10월 11일
자로 취임하였다. 1950년 3월 2일에는 제2학기 시업식을 거행했고, 4월 6일에는 재단법인 오산
학원과 오산중학교 설립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이 모든 서류 작업들은 이기춘 선생이 직접 작
성한다. 서류를 제출한 이사회의 교섭 운동은 급진전으로 이뤄져 1950년 5월 20일에 드디어 재
단법인 오산학원의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다. 오산학원 인가 시 오산중학교 설립인가를 동시에
받지는 못했지만, 재단 인가를 받은 이상 중학교 설립인가도 곧 받을 수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고 인식하고 있었다.
오산학원 이사회는 이사장에 서상길이 선출되고, 이사에 김학배(金鶴培) 외 8명, 감사에는 홍
승각(洪承珏) 외 2명이 선출되었다. 재단에도 사무원이 필요했고, 학교에도 사무원이 필요했으
므로 성호초등학교 교사였던 장세복(張世福) 교사를 서무주사로 발령을 냈다.
그 당시 오산사람들은 달라져 가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내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중
학교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기쁨과 학생들의 희망이 어우러져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이름
은 고등공민학교였지만 다니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중학교로 생각하고 있었고 적어도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294 정진흥·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