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3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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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1989년 오산지역이 시로 승격되면서 오산지역은 본격적인 주체적 행정을 펼치게 되었다. 이

                전까지는 수원군에 속한 오산지역으로 존재했고, 수원군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된 이후는 오
                산지역은 수원이 빠진 화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화성군의 군청 소재지로서 오산읍시대가

                도래하며, 이 오산지역이 화성군의 중추적인 교육행정 중심지로 재부상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글들은 오산시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오산학원의 탐구를 통해 사라져가는 오산
                지역 근대 초기 교육의 자료 발굴과 기록과 보존을 겸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생성한 글이다.








                Ⅱ. 오산학원 태동             1)





                1. 일제강점기 오산의 학교



                                                                   2)
                                                                                           3)
                 오산의 근대 교육은 1907년 9월 1일 오산심상소학교(성호면  성호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러나 심상소학교는 1886년 일본이 제정한 「소학교령」에 의해 설치한 일본인 아동을 위한 초등학
                교의 일종이다. 이후 1911년 당시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설립된 신명학교(神明學敎)는 한국인

                                         4)
                을 위한 최초의 사립학교이다.  이 신명학교는 오산의 청소년들을 모아 순수한 한국인 선생으
                로 하여금 근대교육을 실시한 학교이다. 한국 민족정신을 함양시키는데 교육 목적을 두었기 때

                문에, 설립 2년 만에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교육정책으로 인하여 폐쇄되고 말았다.





                1) 오산학연구소 2022, 「청학 53호, 추억을 더듬어서, 2005오산중학 교지」, 『오산학원 관계자료』/전 오산중학교 교사(1948. 12.
                 6~1955. 3. 31), 전 오산중학교 교감(1955. 4. 1~1957. 3. 31), 그리고 2005년 당시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로 근무했던 이기춘
                 선생이 오산학원의 교지 『청학』 제53호(2005년)에 발표한 오산학원의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담은 선생의 글 「추억을 더듬어서」
                 에 기반한 것이다.
                2) 오산의 옛지명
                3) 오산시사편찬위원회, 2020, 『오산시사』 4권, 257쪽.
                4) 위의 책,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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