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4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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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6. 1795년(정조19) 기록
                  『일성록』, 정조 19년

                 · 전교하기를, “우리 부자의 영정을 모신 문묘(文廟)가 화성에 세워진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

                 가. 저 많은 선비를 이끌고 교궁(校宮)에 공경히 배알하고 사우(祠宇)를 삼가 바라보게 되었
                 으니, 더욱 공자의 순수하고 밝은 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일 대가(大駕)가
                 화성에 도착하는 때에, 예조 판서를 보내 작헌례를 대신 행하게 하라고 예조에 분부하라. 제
                 물(祭物)에 대해서는 이미 경기 감사에게 연석(筵席)에서 하교한 것이 있다. 제관(祭官)은 전
                 적(典籍) 공윤항(孔胤恒)을 대축(大祝)으로 삼고 내섬시(內贍寺) 관원(官員) 공윤동(孔胤東)과
                 장용영 초관(壯勇營哨官) 공술조(孔述祖)를 재랑(齋郞)과 축사(祝史)로 삼아 수향(受香)하게
                 하라.”하였다.

                 <정조 19년 윤2월 9일>


                 · 원소(園所)의 한식 제향을 행궁에서 전향(傳香)하라고 명하였다.
                 전교하기를, “원소의 한식 제향을 행궁에서 전향하라. 축문(祝文)은 문임(文任)을 패초(牌招)
                 하여 특별히 지어 올리게 하고, 헌관은 광은부위(光恩副尉)로 하고, 재랑(齋郞)과 축사(祝史)
                 는 수가하는 삼사(三司) 중에서 차출하여 보내라고 분부하라.” 하였다.
                 <정조 19년 윤2월 11일>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의 사료로 보았을 때, 궐리사의 건립부터 능행차의 순간에도 다양
               한 방법으로 궐리사에 대한 정조의 애정을 표한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자의 후손인 공씨가

               수원부에 정착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궐리사의 건립을 명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었던 공자의
               초상화를 궐리사에 하사하고 직접 편액을 작성하였으며, 능행차 당시에 궐리사에 예조판서를

               보내 작헌례를 먼저 행하게 하는 등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공자에 대한 제향과 강학 기능을 동
               시에 수행하는 교육 공간으로서 역할을 만듦과 동시에 수원 화성에 대한 신도시에 유학적 전통
               을 진작시키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세람교



                세람교는 오산시와 화성시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삼남길에 위치한다. 세람교는 오산시 향토문
               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한신대학교 박물관 전시실에 전시 중인 봉학교비와 매장문화재 조
               사를 통해서 확인된 세람교지 두 가지의 연관된 문화재가 존재한다. 세람교의 명칭은 봉학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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