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7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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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1795년 기록
표27. 1795년(정조19) 기록
『일성록』, 정조 19년 윤2월12일
· 내가 이만수에게 전교하기를, “ 승지는 문이 열린 뒤에 향축(香祝)을 받들고 먼저 원소(園
所)에 나아가 산신제(山神祭)를 먼저 설행(設行)하고 혼유석(魂遊石)에 제품(祭品)을 진설한
다음 자궁(慈宮)이 머무실 소차(小次)를 점검하고 난가(鑾駕)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라.” …(중
략)… 하류천(河柳川), 황교(皇橋), 옹봉(甕峯), 대황교(大皇橋), 유첨현(逌瞻峴), 유근교(逌覲
橋) 앞길을 경유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신하들과 장관(將官)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하
였다. 만년제(萬年堤)를 경유하여 동구(洞口)에 이르렀다. 전교하기를, “군뢰(軍牢)는 영기(令
旗)를 가지고 좌우로 나누어 서서 시위하여 사람과 말이 화소(火巢) 근처에 난입하여 수목(樹
木)을 훼손하지 말게 하라.”하였다. 내가 먼저 재실 밖 막차(幕次)에 나아가 공경히 자궁의 가
교를 맞이하였다. …(중략)…
<정조 13년 10월 7일(기미)>
『일성록』으로 살펴보았을 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조 능행차의 초창기 경로에는 세람교를
통해서 현륭원으로 이동하였지만, 수원화성 건립과 시흥로 개설에 따라서 대황교를 통해서 현
륭원으로 이동하는 경로로 변경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맞이
하여 오는 것과 함께 지속적인 능행차를 염두해두고 경로를 정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Ⅳ. 맺음말
정조의 능행차가 시작된 1789년부터 1800년대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홍재전
서』 등의 사료를 중심으로 오산시 문화재와 연관된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세람교와 연관
된 사료들을 통해서 정조의 능행차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능행차의 경로
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세람교에 대한 자료는 2006년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자료와 오산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봉학교비로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향후 황구지천
오산의 문화재와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검토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