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5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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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발견된 곳과 세람교지가 조사된 지역이 멀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 세람교에 관한 문헌 기록

                은 발견되지만 봉학교는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동일한 다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7)
                 . 세람교에 대한 내용은 『일성록』과 『홍재전서』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사료에서 확인
                되는 내용을 근거로 세람교와 정조 그리고 능행차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5. 세람교지 발굴조사 사진(2006년 발굴조사, 중앙문화재연구원)


                 ① 1789년 기록
                                               표27. 1789년(정조13) 기록
                   『일성록』, 정조 13년 10월6일


                   · 새 원소(園所)에 나아갔다.
                   평융복(平戎服)을 갖추고 교(轎)를 타고 행궁(行宮)을 나갔다. 약원 도제조 이성원(李性源),
                   제조(提調) 윤숙(尹塾), 우의정 김종수(金鍾秀)가 앞으로 나아와 문안하고, 이어 향귤차(香橘

                   茶)를 올렸으므로 마셨다. 햐교하기를, “새벽이 되면 즉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수가(隨駕)
                   하는 군병이 백리 길을 달려온 끝일뿐만 아니라 또 숙참(宿站)을 당겨서 정하였기 때문에 모
                   두 피곤할 것이니, 조금 기다려야 할 형세이다. 일일이 밥을 먹이고 전진하더라도 오시(午時)
                   를 넘지는 않을 것이니, 조상식(朝上食)의 예를 행하는 것은 우선 기다리라. 총호사는 이리
                   알라.” 하고, 이어 주마(走馬)로 달려가서 하유(下諭)하라고 명하였다. 날이 밝은 뒤에 안개가
                   점점 짙게 껴서 거의 눈앞을 분간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성원이 교의 창문을 닫기를 청하였으
                   나 허락하지 않았다. 상유천(上柳川)과 하유천(下柳川), 세람교(細藍橋)를 거쳐 재실(齋室)의

                   앞에 이르러 교에서 말을 풀고 재실로 들어가니, 안개가 깨끗이 걷히고 해가 환히 비추었다.
                   <정조 13년 10월 7일(기미)>





                7) 오산문화, 2020, 오산향토유적 지정문화재, 박연희


                                                         오산의 문화재와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검토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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