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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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구현(獐項口縣), 삼국시대 초기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475년(고구려
장수왕 63년)에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당시 시흥시 북부지역은 ‘매소홀현(買召忽縣)’ 남부지역
은 ‘장항구현(獐項口縣)’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소홀현과 장항구현은 551년(백제 성왕 29)에 백제가 지배력을 회복하면서 다시 백제의 영
토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553년(신라 진흥왕 14)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게 되자 신라의 영
토가 되었다.
경덕왕 16년(757년) 기존의 지명을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바꾸었는데, 이때 장항구현은 '장구
군(獐口郡)'으로 승격하였고, 매소홀현은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어 율진군(栗津郡)에 속하
게 되었다.…」
1) 장항구현(獐項口縣)은 바닷가의 노루목이다. ‘산줄기가 바다로 향해 길게 늘어진 길목’ 또는
‘배가 노루처럼 드나드는 항구’라는 의미다. 口(입 口)와 臼(절구 臼)의 구는 음이 같고 의미가
같다.
2) 소래습지생태공원은 해발 210m의 거마산과 해발 299m의 소래산에서 발원하는 신천과 장
수천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두 하천은 소래포구를 지나 서해로 흘러나간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마전저수지와 물왕호수에서 발원하는 장현천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장현천의 물은 월곶포구를 지나 서해로 흘러나간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상류에 구모로성을 의
미하는 거모동(去毛洞)이 위치한다.
3) 소래산에 오르면 서해로 이어지는 소래포구와 월곶포구가 발아래에 놓인다. 소래산 7부 능
선의 장군바위에 마애보살입상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 초기의 불상으로 보물 1324
호다. 먼 항해에 안전을 기원하는 불상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소래산 주변 바닷가에 큰 마을
이 형성되어있었음을 상징한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去毛洞)과 인천광역시 동남구 거마산(巨馬山)에 그 흔적이 남았
다. 구모로성의 구모(臼模)와 거모동의 거모(去毛)의 소릿값 또한 같다. 구(臼)처럼 생긴 시흥시
월곶포구의 안쪽에 거모동이 위치한다.
광개토왕비문에 등장하는 모수성은 독산성일까?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