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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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은 일본서기 응신천황 條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보다 일본서기
의 백제기가 백제 진사왕의 죽음을 더 세세히 기록한다.
백제 진사왕이 구원(용인구성?)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에서 백제의 열세(劣勢)를 읽을 수 있
다. 관미성(강화군)을 고구려에 빼앗긴 이후 백제는 한성에서 서해로 나가는 뱃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도성 한성에서 관미성으로 나가는 한강 수로가 막히자 백제는 구모로성과 각모로성을
대외 포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구려의 장항구현(獐項口縣)을 백제 이잔의 구모로성(臼模盧城)으로 본다. 시흥시 거
머동(去毛洞)과 장곡동(獐谷洞)에 구모로성과 장항구현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 이잔 58城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구모로성(臼模盧城)을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去毛洞) 일대에 비정한다.
3. 各模盧城(각모로성)
고구려 광개토왕이 討한 백제 이잔(利殘)의 세 번째 읍성은 각모로성(各模盧城)이다. 과연 각
모로성(各模盧城)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필자는 그 지점을 남양만에 위치한 경기도 화성시 남
양동(南陽洞)으로 본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은 마한 원양국(爰襄國)과 상외국(桑外國)의 영역
이었다. 각모로성(各模盧城)을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은 바다로 열려 있다. 사서에 등장하는 포구가 세 곳이나 된다. 신라
의 포구였던 당은포(唐恩浦)와 조선의 포구였던 마산포(馬山浦), 적진포(赤津浦)다.
당은포는 강화도 혈구진(穴口鎭), 완도 청해진(靑海鎭), 대부도 당성진(唐城鎭)을 잇는 신라의
대당 포구였다. 김춘추가 나·당연합군을 결성코자 당(唐)에 건너간 포구였다. 마산포는 청(淸)
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압송(押送)하였던 포구였다. 적진포는 삼남(三南)에서 올라온 세곡을
보관하던 해창(海倉)을 관리하던 포구였다.
신라의 당은포와 조선의 마산포, 적진포는 시화호간척사업, 화옹호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
다. 지금은 세 포구를 대신하여 대부항(大埠港,방아머리항)과 전곡항(前谷港), 궁평항(宮坪港)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당성진(唐城鎭)은 당은포(唐恩浦)를 관리코자 쌓은 통일신라의 석성(石城)이다. 그러나 신라
의 영역이 되기 이전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토경이었다. 당성(堂城), 당항성(黨項城)으로 불린 백
47) 응신천황, 완역 일본서기, 전용신譯, 1993, 일지사, 172쪽.
광개토왕비문에 등장하는 모수성은 독산성일까?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