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오산학 연구 6집
P. 66

Ⅲ. 세마대 복원 이후의 변천과정





                해방이후 폐허가 된 독산성은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198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지속적

               으로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독산성 내에서 가장 먼저 복원정비가 이루어진 것은 세마대이
               다. 세마대는 당시 마을주민들이 주도하여 ‘독산성 세마대 고적 중건 위원회’를 조직하고 자체적

               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1957년 8월 15일에 복원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장에서는 세마
                                                                          14)
               대 복원과정을 살펴보고 1957년부터 1979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천 을 거쳤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세마대의 복원



                세마대는 1957년 ‘독산성 세마대 고적 중건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정부와 시민 등 각계각층의
               보조금과 노력으로 건립되었다. 특히 시민들이 자발적·주도적으로 독산성의 역사를 복원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세마대의 복원에 대한

               과정과 경위는 ‘세마대 중건 경위서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마대 중건 경위서
                                                                     15)
                임진왜란 후 세마대가 건립되고 정조 16년 10월 3일 중수 된 것 이 경술년 한일합병 후 왜인
               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4287년(1954)  9월  1일        세마대 중건 추진을 착수하고 요로 당국에 절충하여
                4288년(1955)  1월 24일        세마대 재건 촉진대 및 농악대를 결성하였다.

                4288년(1955)  3월 15일        농악대 활동에 의한 기금 45만 3727환이 수입되고(오산면,
                                         안룡면, 태장면 일부)
                4288년(1955)  4월 27일        구황실 총국장 윤우경씨로부터 희사금 임목 8000재를 수취하

                                         였으며(소요목재 23500재 중)





               14) 1957년부터 현대에 이르는 변천과정은 이용범, 2016, 「독산성과 세마대지의 변천 -보수기록을 통하여-」, 『烏山學硏究(Ⅱ)』,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의 세마대 변천관련 내용을 수정보완 하였다.
               15) 이 기록은 남장대가 개건 된 시기로 남장대를 세마대로 오인하여 기록된 것이다.



               64  이용범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