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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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부실한 관리 와 6.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6.25 당시 오산의 죽
                미령과 갈곶동 등에서 여러차례 전투가 있었고 독산성도 많은 포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
                다. 부실한 관리 속에서도 잔존하고 있던 성곽과 내부 시설물은 대부분 이 때 파괴되었을 생각
                된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지적원도를 보면 독산성 내부에 지목이 대지로 구분되는 곳이 몇 군데 확
                인되는데 현재 복원된 세마대가 있는 곳은 지목이 임야로 되어있다. 지적원도의 제작연도가

                1912년인 것을 볼 때 제작 당시 세마대가 잔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위치에 대해서는 확인
                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세마대가 1912년 지적원도에서는 임야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화성지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아 현재의 위치가 맞을 가능

                성도 배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0년 조사에서도 독산성의 공간분할 및 지표상에 노출된 석
                                                                 13)
                렬 등을 볼 때 복원된 세마대가 원위치가 아닐것으로 추정 하고 있어 내부조사를 통해 정확한
                위치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세마대












                                         <도판 2> 1912년 지적원도 및 현재 세마대 위치



                12) 주민 소개령 이후 약 2년 뒤에 실시된 고적조사 당시에도 성곽 등이 대부분 붕괴 되어있다는 것으로 볼 때 소개령 이전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았으며, 소개령 이후 에는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여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
                 로 판단된다.
                13) 주 4의 보고서 p113.


                                                                      세마대 건립 및 변천과정 연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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