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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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좌 : 세마일화(출처 : 화성시청), 우 : 세마대(출처 : 오산시청)




               Ⅱ. 세마대 복원 이전의 기록





                세마대는 진남루와 더불어 독산성에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 임진왜란과
               관련하여서 독산성을 소개 할 때 빠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마대가 갖고있는 가치와 상징성에

               비하여 『華城志』와 『水原郡邑誌』에서만 그 명칭과 일화가 확인되고 그 외 다른 곳에서는 확인되
               지 않을 정도로 문헌기록이 빈약하다. 이러한 기록의 부재로 인하여 세마대와 관련된 일화만 지
               속적으로 소개될 뿐이고 기록에 대한 검토나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 1957년 복원된 세마대도 지표상에 노출된 초석이 기준이 된 것은 아마도 상술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기록이 빈약하지만 세마대의 명칭 등이 기록된 『華城志』와 『水原郡邑

               誌』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기록을 살펴보고 추가적으로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자료도 함께 살펴보
               면서 부족하지만 복원 이전의 세마대에 대하여 검토해보고자 한다.



               1. 조선시대



                조선시대 세마대의 기록은 크게 명칭과 일화가 기록은 『華城志』, 『水原郡邑誌』,『雲養集』이 있
               는데 운양집의 경우 세마대의 명칭은 나오지 않지만 세마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각 문헌의 내용
               은 아래와 같다.




               58  이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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