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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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들 깜짝 놀라며 신이 돕는다 여기니
오랜 포위를 하루아침에 깨뜨릴 수 있었네…(후략)…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화성지에서 ‘洗馬臺’라는 명칭과 함께 그 일화가 처음 등장한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건립연대와 함께 위치와 크기도 기록되어 있다. 수원군읍지에는 박기수의 시를
제외하고는 화성지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운양집은 1914년 운양 김윤식이 저술
한 것으로 건재집은 1865년 12월에 건릉 참봉에 제수된 후 1868년 체차되어 돌아올 때까지의
시를 엮은 것으로 독산성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에 세마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문헌①-ⓐ와 문헌②-ⓐ의 ‘세마대라고 일컬으니 곧 지금의 장대이다.’는 굉장히 중요
한 기록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문헌①-ⓑ에 명칭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장대에 대하여
위치와 규모, 건립연대까지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 장대의 명칭이 세마대라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독산성 내 장대들의 기록을 볼 때 세마대로 보여지는데, 독산성 내 장대에 대해서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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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①-ⓑ의 장대와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에 기록 된 남장대가 유일하다. 그러나 남장대의 경
우 남장대로 지칭되고 있어 성 위에 위치하는 문헌①-ⓑ의 장대와 위치적인 차이가 있고 규모
에 있어서도 남장대는 6칸으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남장대는 정조16년(1792)에 개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조11년(1787)에 건립된 장대를 5년만에 개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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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부분이다. 또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볼 때 남장대는 진남루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
따라서 독산성 내 다른 장대인 남장대와 규모, 위치 등의 차이를 볼 때 문헌①-ⓑ에 기록된 장
대는 남장대와는 별개의 장대로 문헌①-ⓐ에 세마대라고 일컬어지는 장대로 보는 것이 보다 합
리적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장대의 건립연대에 있어 정조 11년(1787)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독산성전투와
장대의 건립 사이에 약 200년이라는 시간차이가 있는데, 건립연대에 있어서 기존의 장대를 개
건 하거나 중수 등 개보수연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성지의 다른 건축물들의 기록을 보면
建, 改建, 重修로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고 특히 建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새롭게 건축하는 경
5) 『朝鮮王朝實錄』正祖實錄 정조16년 10월 3일
…(전략)…南將臺移舊基三尺改建…(후략)…
『日省錄』 正祖 정조16년 10월 3일
…(전략)…南將臺 六間 向內三尺移建 改丹靑…(후략)…
6) 주 2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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