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6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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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 소 돼지 닭 조라 흰시루 팥시루 기타
원동 + 밀주 + + 神體=돌멩이
지곶동 + + + 香
탑동 + + +
계 18 2 2 10 9 6
먼저 희생(犧牲)은 소를 올리느냐 돼지를 올리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지역의 경제
적 능력 정도와의 관련이 더욱 밀접하다. 여력이 되면 소를 올리고 여력이 부족하면 소를 올린
2)
다. 그런데 닭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흰시루를 올리는가? 팥시루를 올리는가?는 신격을 산신이라 하면서 옛법을 잘 계승하
고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결론적으로 산신의 시루는 흰시루이다.
떡을 올리는 데에 있어 가장 특색이 있는 지역은 부산동이다. 부산동은 지역에서 불리는 이름
이 가마뫼이다. 이는 부산(釜山)의 부(釜)가 ‘가마’로 ‘가맣다’,‘검다’의 의미이며 검은산의 의미로
부산으로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또한 이곳은 경기지역 재인(才人)들이 학습하면서
본거지를 이루고 살았던 경기도 가계세습무인 화랭이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이라는 사실과 무관
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하기에 검은시루를 올린다고 판단한다. 검은시루는 조상시루이다. 조
상께 올리는 떡이 바로 검은콩으로 올리는 검은시루인 것이다. 이는 마을의 형성과정과의 관련
성에서 생각하고 추정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여 화랭이집단의 거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
며 화랭이의 조상 가운데 입향조에 해당하는 이를 모시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여기에 의미를
더하는 것은 가래떡을 올린다는 점이다. 가래떡을 용떡이라고 하면서 제의에 올리고 있는데 용
떡은 어업을 주로하는 지역에서 용왕에게 올리는 제물이다. 그런데 마을의 어디에서 쉽게 물길
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와 까닭에서 용떡을 올리게 된 것일까? 좀 더
소상하게 세밀한 제보와 연구가 있어야겠으나 필자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부산동이 오산천과 맞
닿아 물길을 접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모습으로가 아
니라 그 옛날의 지형과 그 특성은 적어도 100년 전, 200년 전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부산동
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형성되는 과정에 나타났던 역사의 진행과정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
2) 다만 나라의 제의와는 다르다. 나라에서는 임금이 직접 참여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소와 돼지가 달랐다. 임금이 직접 참여하
는 경우에 희생으로 소를 올렸으며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올렸다. 「華城築城時 告由祭硏究」, 김용국.
비교민속학회, 2005
204 김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