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7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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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다가 150년이 지난 1753년에 진남루를 보수했다. 다시 이때부터 39년이 지난 1792년에 산

                사태로 성벽이 많이 허물어져 성벽 1,004보를 쌓고 진남루를 뒤로 3척을 옮겨 다시 세웠다. 그
                러니까 현재의 성벽 대부분은 230년 전 보수할 때의 모습이다.
                 따라서 독산성 복원의 기준은 18세기 후반 정조시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독산성은 세계문화

                유산 융·건릉과 화성, 남한산성과 어우러져야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ⅩⅡ. 독성산 중수기 원문 및 번역문








                 贅言卷二十三 記


                 禿城山城重修記 代人作



                 惟玆禿城彈丸之小耳而與南北漢鼎峙環衛京師

                 控引湖嶺屹然爲左輔之一重鎭城之南舊有樓曰
                 鎭南而歲久傾圯殆不可登臨焉余適承乏来攝州
                 事慨然有修擧之意乃屬之中營將金君景游授之

                 方略而資其工役.金君能捐廩鳩材仍其舊而易之
                 不殺月而煥然復新焉其才之長於營幹而其志之

                 勤於職責俱可尙也己城之設施之由樓之廢興之


                 蹟有月沙李相國記文可徵而留得萬丈光焰壁壘

                 爲之增重眞所謂韓文公脚下不是做文章處者也
                 矧余業弓馬不閑文墨者又敢措一辭於其後耶但
                 玆樓剏建於  萬曆己亥至  崇禎後丙辰凡七十

                 八秊而重修今年癸酉距丙辰適又七十八秊而復
                 再修馬是可異也今而後七十八年一修擧當爲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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