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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訓錬大將具善行曰: "宮城甚踈虞, 此蓋營繕草率築墻之致. 三軍門旣爲分當都
                   城, 宮城卽內城也, 亦宜分授五營, 定將校董役, 似有實效. 臣意則罷兵曹舖軍,

                   自三軍門, 分改軍舖, 一舖各用五人, 以五營入直軍士, 分排守直, 每舖五人輪
                   巡一更,  羅絡相望,  終夜警守,  將官率餘軍,  巡其宇內,  巡法頓勝於前矣."  上
                   曰: "所陳俱好, 自兵曹成節目行之可也." (英祖實錄 96券, 英祖 36年 8月)

                      "宮墻巡綽之踈虞,  請計其間數,  設置軍舖,  以標內各營入直軍,  分排守直,
                   其於警夜有嚴矣." 批曰: "元戎之緊重, 尤倍兩營. 近日復畀之擧, 不以旣耄而

                   難之, 誠予知卿之可仗. 觀於用卿、捨卿之異於凡帥, 慧眼達識, 必有窺其相與
                   之際者。  卿之所陳一二條,  卽予嘗所檃括彌綸,  以求其易行之術,  以待其可爲
                   之期. 夙宵一念, 寤寐如結, 一欲展施而後已. 若使此計成, 而轉以及於大於此

                   者, 則均役之聖志可明, 初元之設言可踐, 三軍萬民, 擧在帡幪之中, 而如卿所
                   云上番之停番, 軍舖之碁置等方略, 不期採而採. 當其時, 與有榮於卿大矣. 環

                   視有位, 語孰到此? 此所以一聞犂然, 丕加嘉乃. 附陳水陸軍換定事, 許令廟堂
                   稟處." (正祖實錄 44券, 正祖 20年 3月)




                                             군포는 문헌에서 보이듯 순찰을 하거나 경비 또는 방비를
                                              위한 일종의 초소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
                                              에서는 군포,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에서는 성랑으로 등장하

                                              는 이 건물지들은 현재로써는 유사한 시설이었던 것으로 파
                                              악된다. 정확한 형태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북한지』 서두

                                              에 확인되는 北漢圖에 북한산성을 따라 그려진 성랑의 모습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면 6의 성곽을 따라 그려진 건물
                                              이 성랑으로 추정되며, 우진각 혹은 맞배지붕으로 추정된

                                              다. 이와 같은 성랑은 산성의 운영에 필요한 물자들을 보관
                                              하는 창고의 역할과 군사의 주둔지 등이 주로 이루어진 것

                 도면 6.『북한지』 북한도 내 성랑          으로 보인다. 결국에 성랑과 군포은 모두 동일한 역할을 한
                건물로 추정되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지의 잔존 형태로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와
                같은 시설들은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산성에 물자와 병기를 보관하여 운용한 것으로 보인

                다.


                                                              오산 독산성 축대와 건물지의 성격과 양상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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